지난 94년 2월초.

"일요일 경조사는 무조건 사절한다"는 열렬한 등산꾼인 필자를 비롯해
이상석 피부과의원장, 이운표 전 교육부서기관, 서순일 이스디대표,
김광호 LG그룹부장 등 5명이 북한산 겨울산행을 마치고 하산할 때다.

이날따라 살을 에이는 듯한 매서운 겨울바람에 고생했던 우리 일행중
누군가가 "허영호 그 친구, 히말라야에 오를때 얼마나 추웠을까"라고
운을 뗐다.

이 말을 시작으로 허영호얘기는 하산주 하는 자리에까지 이어졌다.

이야기는 이 사회가 한국인의 기개를 드높인 세계적 산악인 허영호를
너무 몰라준다는데 까지 발전했다.

이 자리에서 필자는 "영하 30~40도의 강추위를 이기고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8천m의 고봉을 오르고 극지까지 걸어간 예사롭지 않은 사람을
이 사회가 너무 무관심하게 대하지 않느냐"고 맞장구를 쳤다.

이런 공감아래 허영호를 도와주는 모임을 만들자는데 의견이 모아졌고
다음날부터 이 자리의 의기투합을 주위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안승균 일동제약부사장, 전용민 한의원원장, 이재용 동진기업대표,
이정치 일동제약정책실장, 민승기 서일산업대표, 백운오 유니기획국장 등
11명이 뜻을 같이하기로 했다.

이렇게해서 94년 중반기쯤 "허영호를 좋아하는 사람들" 모임이 결성됐다.

사람이 모이자 우리는 지금은 "허대장"이라고 부르는 허영호씨에게 연락,
비로소 상견례를 갖게 됐다.

모임을 결성한후 우리가 허대장을 처음 후원한 것은 북극점 탐험이다.

거액의 원정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쩔쩔매던 허대장에게 필자와 김광호
회원은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후원업체를 물색해줬다.

우리모임의 지상목표는 "신이 빚은 인간의 한계점"이라 불리는 지구의
3극점을 정복한 허영호의 선구자적 업적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게해
청소년들이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꺾일줄 모르는 한국인의 도전정신을
마음에 새기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