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그렇게 우습게 몰아붙이지 마, 엄마. 엄마는 그렇게 해 가지고
어떻게 이 복잡한 사회의 괴로운 병자들을 치료해요? 좀 더 합리적이고
요령좋은 의사가 되어봐요"

사뭇 엄마를 가르치려드는 딸에게 공인수는 그만 어처구니가 없다.

그러나 노여워하거나 성을 내면 대화가 단절이 된다.

그녀는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 보인다는 속담처럼 한껏 말을 잘
들어주는 엄마가 되어보기로 이를 악물고 곱게 응대를 한다.

그렇게 힘겨운 노력을 해야 아이들과의 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 우리 심리학자 선생. 재수가 없어서 재수생이 되었다는 그 논리를
좀 더 길게 펴봐라. 열심히 들어줄 것이니"

"나야 원래 어려서부터 공자앞에서 문자쓰는 아이로 컸지 않우"

이 아이는 교양이 있고 항상 세상을 호의적으로 본다.

남자친구들의 이야기를 물어봐야 대화가 잘 풀리는 것은 그 나이
또래들의 특징이다.

그것은 그 나이 또래의 관심이 모두 이성에게 많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미아가 대학에 실패한 것은 미술과외를 교수에게 받지 않고 자기의 평소
실력을 과신한 데서 온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특정한 교수에게 많은 과외비를 내고 공부한
친구들은 일류 미대에 다 들어갔는데 성적이 우수하고 전시회나
학생미전에서 상을 많이 탔던 실력파 미아는 재수없게 떨어지고 말았다.

그것이 어떻게 해석을 해야 될지 모르는 부패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두 모녀는 그때 땅을 치며 통곡을 했다.

그리고 이류대학에 가느니 일년을 더 공부해서 일류대학에 가는 것으로
낙착을 보았지만 아무튼 그때처럼 비싼 과외를 안 시킨 것을 후회한 적도
없다.

사회의 부조리를 너무도 까맣게 모르고 실력만 믿었던 것이다.

가슴을 칠 일이지만 이미 지나간 실패다.

"엄마, 무슨 생각하구 있어요? 기분이 안 좋아보여"

"응, 그냥 지나간 일들. 그리고 오늘 네가 좋아하는 자켓을 꼭 사주어야
겠다는 그런 생각"

그녀는 거짓말반 진실반으로 얼버무린다.

"우울한 생각을 자꾸 하는것 정신위생상 나쁘다고 배웠습니다. 오마니"

"맞아. 어서 나가자. 우선 옷부터 사고 밥을 먹을까?"

그녀는 기분을 프레시하게 백팔십도로 바꾸면서, "엄마는 너만 보면
네가 잘못된 것은 모두 내 책임으로 통분한단다. 사실은 누구의 실수도
아니었던것 같은데"

"엄마, 지금부터는 옷에 대한 것만 이야기하자. 나는 오렌지색을 입고
싶어요. 밝고 뭔가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색이 오렌지색 같아"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