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일천개의 각종 규제를 혁파하겠다는 고건 신임총리의 취임일성이
어떻게 실행될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민간전문가도 참여해 한시적으로 운영될 전담기구설치
및 특별법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규제철폐 뿐만 아니라 자유경쟁을 제한하는 각종 기업관행도 함께
제거하며 정부행정에도 경영마인드의 도입을 계획하는등 상당히 의욕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새내각의 강한 의욕에도 불구하고 일반국민들의 반응은 아직까지는
두고보자는 식으로 다분히 유보적이다.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고비용 저효율구조의 상당부분이
지나친 행정규제 때문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현정부도 집권하자마자 국정목표인 경쟁력강화를 달성하기 위한
중점과제로 규제완화를 강력히 추진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의 규제완화노력은 완전히 실패했다.

건수위주로 실적만 잔뜩 부풀렸지 핵심은 건드리지도 않았고 한쪽에서는
규제를 없앤다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규제를 양산했기 때문이다.

이러니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하며 실망한 일반국민들이 새내각의
규제철폐방침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규제철폐를 성공시키기 위해 해야할 일은 대통령직속의 전담기구
설치나 특별법제정이 아니라 정책방향을 민간자율로 바꾸고 행정조직을
과감하게 축소하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에도 겉치레로만 민간전문가들을 참여시킨 각종 위원회가
너무 많았고 심지어는 위원회의 존폐를 검토하는 위원회가 필요한
지경이었다.

또한 창구지도다 행정협조다 하며 법규에도 없는 규제가 횡행하고
걸핏하면 복지부동(복지부동)하는 일선공무원들의 행태를 보면 특별법
제정에도 별다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 보다는 공무원수를 줄이고 행정단계와 조직을 축소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오늘날에는 행정도 서비스의 일종으로 비용-수익을 당연히 따져봐야
한다.

특히 불필요한 행정조직이나 공무원들이 자구책으로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기 위해 규제를 양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 점에서 말로는 "작은 정부"를 외치면서 걸핏하면 공무원 사기진작이
필요하다며 고급공무원수를 늘리고 직급인플레이션을 일으킨 현정부는
깊이 반성해야 하겠다.

또한 금융, 공장입지및 건축, 부동산 등에 아직도 겹겹이 쌓여있는
무소불위(무소불위)의 각종 정부규제를 하루빨리 철폐해야 할 것이다.

지금 온나라를 들끓게 하고 있는 한보부도사태는 바로 이같은 정부규제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정이다 세계화다 하며 지난 4년동안 몰아친 문민정부의 개혁드라이브에도
행정규제는 여전히 끄떡없다.

이제는 바람대신 민간자율의 햇볕으로 규제의 외투를 벗겨야 한다.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면 관치금융의 빙산은 녹게 된다.

불필요한 규제를 만들지 않으면 행정조직과 공무원수는 줄게 마련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