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포철에도 노조를 세우겠다"

여야가 노동관계법 재개정안에 합의하자마자 민주노총은 이렇게 밝혔다.

올 춘투에서는 무엇보다 조직확대에 주력할 방침이며 무노조주의를
표방해온 삼성그룹 계열사들과 공기업 포철을 최우선 공략대상으로 삼겠다는
것.

복수노조가 시행되기도 전인데도 상급단체간 노동계 주도권다툼이 본격화된
대표적 사례다.

노동법개정작업 초기부터 제기된 경영계의 우려들이 이처럼 벌써부터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경영계는 그렇지 않아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조직확대에 나서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두 단체간 경쟁으로 산업현장이
큰 혼란을 겪게될 것을 오래전부터 우려해 왔다.

그러나 경영계의 이같은 걱정에도 불구하고 "복수노총시대"가 열렸다.

개정 노동법은 상급단체 복수노조를 즉각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단위 복수노조는 5년간 유예했지만 상급단체 복수노조 허용만으로도
노동계 판도변화가 불가피해져 상당기간 산업현장에 적지않은 혼란을 가져올
것이 확실하다.

첫번째 예상되는 변화는 조직확대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우선 노조가 조직되어 있지 않거나 노조 활동이
미비한 사업장을 수중에 넣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제3자개입 금지조항이 삭제됨에 따라 상급단체 지도부가 개별사업장을
전보다 자유스럽게 방문, 노조 결성을 유도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또 노조활동이 활발한 사업장이 하더라도 상급단체의 활동에 따라 노선을
바꿀수 있기 때문에 노동단체의 활동에 따라 노동계는 한바탕 이합집산이
예상되고 있다.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이 나뉘거나 제3의 상급노동단체가 설립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상급단체 차원에서 조직확대에 주력하는 단계에서는 섣불리
분열하진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노동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바는 상급노동단체들이 선명성경쟁에 몰두하는
상황이다.

문형남 부산지방노동청장은 "상급노동단체들이 이념이 비슷하고 나아가
동일직종을 조직확대대상으로 공략할 경우에는 선명성경쟁을 벌이게 된다"
면서 "이렇게 되면 산업현장이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H그룹 노무담당임원은 "생산현장을 볼모로 잡고 선명성경쟁을 벌여선
안된다"며 "노동단체는 진정 조합원을 위하는 일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조직확대 차원에서 정치세력화를 지향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단체가 조합원 권익보호를 위한 노동운동에 치중하지 않고 사회를
개혁하려고 사회운동을 벌인다면 결코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노동전문가들은 복수노조 허용으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반드시 법을
엄정하게 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조의 불법파업이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든 온정적으로 처리하지 말고
엄정히 다스려야 한다는 얘기다.

노조의 불법쟁의에 대해서는 경영계가 취업규칙대로 엄정히 처리해야 한다
고 말했다.

S그룹 노무담당자는 "노조 설립을 막으려고 회사가 근로자들에게 "선물"을
안겨줄 경우 다른 기업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셈이 된다"고 지적했다.

노사가 다같이 개정된 법을 제대로 지킨다면 복수노조 허용이 장기적으로
노동운동을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게 된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한국경총 김영배상무는 "음지에 있는 식물을 양지로 옮겨 놓으면 색깔이
변한다"면서 "건전한 노동운동세력만 남고 건전한 노조만 지지받도록 유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근로자 선택폭이 넓어짐에 따라 조합원들에게 실익을 주지 않는 노동
운동은 지지받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