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식 <통산부 에너지관리과장>

우리나라의 에너지소비는 95년도 기준으로 세계 11위로서 인구가 세계
25위인것과 비교하면 대단히 높다.

이 순위는 GDP 규모의 순위와 같으나,96년도에 경제규모는 그대로
11위에 머무른 반면, 에너지소비 순위는 이탈리아를 뛰어넘어 10위가
되었다.

또한 일인당 에너지소비량도 이미 일본에 근접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소비증가율은 10%내외로서 주요 선진국의
2%내외에 비하여 엄청나게 높다.

부존자원이 없어 거의 모든 소요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다보니 에너지
수입에 따른 국민경제적 부담은 에너지소비증가에 비례하여 가중되고 있다.

작년도의 경우 총 2백61억달러에 달하는 에너지를 수입하였고,
석유제품으로 가공하여 수출한 35억불을 뺀 국내소비에 충당된
순수입액만해도 2백6억불에 달했다.

따라서 에너지절약은 굳이 기후변화협약의 이행에 따른 화석연료감축
문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무역수지개선을 위해서도 시급한 정책과제라
하겠다.

정부의 에너지정책과 관련 에저니효율의 개념을 분명히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에너지원 단위(GDP천불당 투입된 에너지의 양을
석유환산톤으로 표시)가 0.42, 일본의 에너지단위는 0.16으로서 우리나라
산업은 일본에 비해 에너지를 과다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따라서 에너지절약에 더 일층 노력하여야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어느 공장도 일본과 같은 물건을 만들면서 2배이상
에너지를 쓰는 곳은 없다.

부가가치당 에너지투입량 차이는 에너지효율 차이라기보다는 부가가치
차이에 따른 것이다.

즉, 그 사회의 기술수준, 자본생산성 등 총체적 효율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부가가치의 차이가 에너지효율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가정하였기
때문에 논리적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예를들어 포항제철이 일본의 신일본제철과 비교하여 같은 철강제품
1톤을 생산하는데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쓴다고하면, 에너지효율이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양사의 단위생산량당 에너지투입량이 같은 경우에도, 포철제품은
톤당 4백달러, 신일철제품은 6백달러이라면, 생산액당 에너지투입량은
우리나라의 포철이 일본의 신일철대비 1.5배인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또한, 에너지저소비형 산업이라할 수 있는, 전자산업의 예를 들어보자.

같은 물건이더라도, 우리제품이 선진국제품에 비해 가격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나마 핵심소재, 부품을 수입에 의존하고있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텔레비젼 한 대를 만드는데 소요되는 에너지는 국산이나
일제 쏘니사 제품이나 같다 하더라도, 동일 부가가치에 대한 에너지투입량은
세배, 네배가 될 수 밖에 없다.

즉, 일본 쏘니사가 한 대 팔아 1백달러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때 우리나라
회사는 세대, 네대를 팔아야 1백달러의 부가가치가 창출된다면, 일본이
한 대 만드는데 들어가는 에너지의양과 우리가 세대, 네대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에너지의 양을 비교하는 결과가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이번에는 노동원단위(GDP천불당 투입되는 노동력을
manhr 로 표시)를 일본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가 1백51, 일본이 41로서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3배이상 높다.

그러나, 같은 물건을 만들면서 일본보다 3배이상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는
공장은 없다.

즉, 다른 물건을 만들고 제조설비, 핵심소재.부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산업구조의 문제가 그대로 투영된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국민생활에 있어서는 에너지과소비문제가 분명히 존재하며
이는 대부분 주택의 대형화, 가전제품의 대형화,승용차의 대형화 추세로
이어지는 과시형 소비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무리 효율개선노력을 기울이더라도 기기자체가 대형화되면 소형보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우리는 이제 이 과시성 소비문화의 악순환 고리를 제도적으로 끊어야
한다.

에너지 과소비문제는 단순한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와 문화의
총체적 문제인 것이다.

중국 인도 등 거대 후발 개도국의 경제성장에 따라 제한된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를 획득하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질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난 70년대와 같은 에너지위기가 다시 도래했을 때 가장
큰 피해자가 되지않기 위해서는 경제.사회구조를 에너지저소비형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정부는 지난 2월5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제1차 국가에너지절약
위원회에서 "97에너지절약 종합대책"을 심의.확정함으로써 강도높은
에너지절약정책을 범부처적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에너지절약정책은 지난 70년대이래 경제사정이 어려워질때마다 강조되곤
하다가 형편이 좀 나아지면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경제는 구조조정의 아픔을 겪고있고 모든 분야에서 거품을 빼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전과정에서 효율을 향상하고
각 분야의 에너지수요 자체를 근본적으로 절감시키는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지만, 우선 당장은 가능한 것부터 실천하여야 한다.

정부와 기업과 국민이 티끌모아 태산을 이루는 자세로 모든 분야에서
편익을 희생하면서 각자 에너지절약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