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성공했다] 김정호 <정엔지니어링 사장>..환경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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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화만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지름길"
오염측정기 전문제조업체인 정엔지니어링의 김정호사장은 19년동안 줄곧
대기 및 수질오염측정기를 국산화하는데 전념해온 엔지니어다.
그는 창업할 때는 물론이고 회사가 위기에 몰렸을 때도 국산화로 돌파구를
찾았으며 2000년까지 이 분야에서 세계 10대기업으로 성장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도 세계적인 제품들을 스스로 개발하고 있다.
매년 한가지 이상씩 국산화에 성공, 지금까지 모두 25개품목을 국산화시켜
국내는 물론 미국 등 선진국에까지 수출하고 있다.
대기오염물질 배출정도를 자동으로 측정할 수 있는 굴뚝배출가스 자동측정
시스템을 비롯해 COD(화학적 산소요구량) 유량 PH농도 등을 측정하는 수질
자동측정시스템(수질TMS) 물체의 밀도 점도 온도 압력에 상관없이 정확한
측정이 가능한 전자계식 유량계측시스템 등이 대표적인 국산화제품들.
이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94년엔 과학기술처로부터 국산신기술인정서를
획득했고 95년엔 장영실상과 세계환경의날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EM마크를 획득하고 중소기업체 유망산업 기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금은 환경부가 지원하는 선도기술개발사업(G-7프로젝트)을 수행하고
있다.
김사장은 사업 초기부터 우리 것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공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71년 외국인이 설립한
금속표면처리회사에 취직했다.
"당시 근무하던 회사에서 금을 녹이기 위해 사용되는 인체에 유독한
청산가리가 마구 배출됨으로써 서울시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양심의 가책때문에 괴로워했지요"
그는 마침내 3년만인 74년 직장생활을 팽개치고 오염파수꾼이 되기위해
환경 공부에 돌입했다.
창업에 나선건 이로부터 5년이 지난 79년.
수입외국제품을 팔아 손쉽게 돈을 벌라는 주위의 권유도 뿌리치고 회사를
설립, 첫해 가스 분진측정기인 스택 샘플러 국산화에 성공했다.
판매도 호조를 보였다.
사업은 해마다 번창해나갔다.
5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매출신장과 함께 종업원수가 갈수록 불어났고
연구소도 설립됐다.
환경사업부설립을 추진하던 선경 등 대기업들로부터 파격적인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던 정엔지니어링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93년.
새정부가 들어선후 규제완화를 강력히 추진하면서 환경모니터링시스템설치
중지명령이 떨어지자 성장가도에 제동이 걸렸다.
각 기업체들로부터 계약취소가 쇄도했다.
회사가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김사장은 회사경영이 힘들수록 국산화에 박차를 가했다.
이때부터 연구소에서는 불이 꺼지는 날이 없었다.
마침내 그해말 대당 5백만원에 수입해 쓰던 전자유량계를 개발, 제작비
1백만원인 이 제품을 2백만원에 시판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수질오염측정기인 망간법 시오디미터까지 불티나게
팔리면서 매출액이 두 품목만 20억원을 넘어섰다.
경영환경이 단숨에 반전됐다.
이듬해인 94년에는 적자이던 회사도 흑자로 돌아섰다.
국산화노력 앞에 위기도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김사장은 국가공인 공해관리기사 1기다.
스스로도 전무인 부인이 사업가이지 자신은 연구원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미 오토스택샘플러 마그네틱유량계 등 세계적 수준의 제품을 이미
개발한 그는 오염측정기부문 국내 최고기업에 만족하지 않는다.
요새는 첨단분야인 레이저를 이용해 가스를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정부의 환경정책이 갑작스럽게 바뀔 때마다 외국제품이 순식간에
범람하게 돼 가슴이 아프다"면서 "국내에서 필요한 기기들을 국산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정책을 시행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 이창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2일자).
오염측정기 전문제조업체인 정엔지니어링의 김정호사장은 19년동안 줄곧
대기 및 수질오염측정기를 국산화하는데 전념해온 엔지니어다.
그는 창업할 때는 물론이고 회사가 위기에 몰렸을 때도 국산화로 돌파구를
찾았으며 2000년까지 이 분야에서 세계 10대기업으로 성장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도 세계적인 제품들을 스스로 개발하고 있다.
매년 한가지 이상씩 국산화에 성공, 지금까지 모두 25개품목을 국산화시켜
국내는 물론 미국 등 선진국에까지 수출하고 있다.
대기오염물질 배출정도를 자동으로 측정할 수 있는 굴뚝배출가스 자동측정
시스템을 비롯해 COD(화학적 산소요구량) 유량 PH농도 등을 측정하는 수질
자동측정시스템(수질TMS) 물체의 밀도 점도 온도 압력에 상관없이 정확한
측정이 가능한 전자계식 유량계측시스템 등이 대표적인 국산화제품들.
이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94년엔 과학기술처로부터 국산신기술인정서를
획득했고 95년엔 장영실상과 세계환경의날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EM마크를 획득하고 중소기업체 유망산업 기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금은 환경부가 지원하는 선도기술개발사업(G-7프로젝트)을 수행하고
있다.
김사장은 사업 초기부터 우리 것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공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71년 외국인이 설립한
금속표면처리회사에 취직했다.
"당시 근무하던 회사에서 금을 녹이기 위해 사용되는 인체에 유독한
청산가리가 마구 배출됨으로써 서울시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양심의 가책때문에 괴로워했지요"
그는 마침내 3년만인 74년 직장생활을 팽개치고 오염파수꾼이 되기위해
환경 공부에 돌입했다.
창업에 나선건 이로부터 5년이 지난 79년.
수입외국제품을 팔아 손쉽게 돈을 벌라는 주위의 권유도 뿌리치고 회사를
설립, 첫해 가스 분진측정기인 스택 샘플러 국산화에 성공했다.
판매도 호조를 보였다.
사업은 해마다 번창해나갔다.
5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매출신장과 함께 종업원수가 갈수록 불어났고
연구소도 설립됐다.
환경사업부설립을 추진하던 선경 등 대기업들로부터 파격적인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던 정엔지니어링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93년.
새정부가 들어선후 규제완화를 강력히 추진하면서 환경모니터링시스템설치
중지명령이 떨어지자 성장가도에 제동이 걸렸다.
각 기업체들로부터 계약취소가 쇄도했다.
회사가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김사장은 회사경영이 힘들수록 국산화에 박차를 가했다.
이때부터 연구소에서는 불이 꺼지는 날이 없었다.
마침내 그해말 대당 5백만원에 수입해 쓰던 전자유량계를 개발, 제작비
1백만원인 이 제품을 2백만원에 시판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수질오염측정기인 망간법 시오디미터까지 불티나게
팔리면서 매출액이 두 품목만 20억원을 넘어섰다.
경영환경이 단숨에 반전됐다.
이듬해인 94년에는 적자이던 회사도 흑자로 돌아섰다.
국산화노력 앞에 위기도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김사장은 국가공인 공해관리기사 1기다.
스스로도 전무인 부인이 사업가이지 자신은 연구원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미 오토스택샘플러 마그네틱유량계 등 세계적 수준의 제품을 이미
개발한 그는 오염측정기부문 국내 최고기업에 만족하지 않는다.
요새는 첨단분야인 레이저를 이용해 가스를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정부의 환경정책이 갑작스럽게 바뀔 때마다 외국제품이 순식간에
범람하게 돼 가슴이 아프다"면서 "국내에서 필요한 기기들을 국산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정책을 시행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 이창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