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넘어 산"이라더니, 노동법이라는 큰 고개를 힘들게 넘은 노-사-정은
이제 또 하나의 험난한 고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달말부터 본격화될 단위사업장의 임단협상은 신노사관계형성을 위한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당사자는 물론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올해 임단협상은 노사 양측이 새노동법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주장을 사업장별 협상 테이블에서 최대한 관철시킨다는
전략으로 맞서고 있어 어느해보다 힘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동법개정으로 합법적 지위를 부여받게된 민노총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노총간의 헤게머니 쟁탈전이 불붙을 경우 올 임단협상은
사상 최악의 상황을 맞을 우려마저 있다.

우선 임금협상이 그 어느때보다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특히 올해는 임금인상률에 대한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차이가 너무 커
이를 어떻게 조정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민노총은 통상급 10.6% 인상에 기준선 위아래로 3%의 편차를 둘수
있다고 밝혀 7.6~13.6%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노총은 민노총보다 높은 11.2%에다 노동법개정에 따른 임금손실예상분이라
하여 7.2%를 더해 18.4%의 인상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경총은 아직 공식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고 있으나
총액임금동결선언이 잇따르고 있는 현재의 분위기로 보아 3%이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노사양측의 주장을 조정하는데 준거가 돼왔던 정부의 가이드라인도
올해부터는 없어진다는 소식이다.

사실 업종과 개별기업에 따라 사정이 다른데도 매년 정부가 일률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정해준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그러나 아직도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의
경우 이번 가이드라인 철폐로 협상이 더욱 어렵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임금협상도 문제지만 근로조건을 다루는 단체협상은 더욱 험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벌써부터 복수노조허용에 따른 신설 노조전임자 임금을 둘러싼 노사간
이견이 팽팽한데다 노사합의를 거치도록 돼있는 변형근로시간제의
운용과 정리해고제, 민노청의 합법화절차문제 등 새로운 쟁점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으로 보아 올해의 임단협상은 결국 단위사업장 노사가
이눈치 저눈치 보지 않고 국민경제 물가 기업의 지불능력 생산성 고용안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개별기업의 실정에 맞게 자율적으로 타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와 관련, 우리는 일부 사업장에서 근로자들이 임금동결을 선언하는
등 회사부터 살리고 보자는 식의 자각이 확산되고 있음을 고무적으로
생각한다.

올해의 임단협상은 그 결과에 따라 새 노동법의 실효성은 물론 장기적인
노사관계의 안정여부도 판가름나게 돼있다.

비상시국은 비상한 각오없이 풀수 없다는 점을 노사 모두 명심해주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