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어디로 갈 것인가.

"제로섬사회"로 유명한 미국의 경제학자 레스터 서로의 1996년판 자본주의
예언서 "자본주의의 미래(The Future of Capitalism)"가 번역 출간됐다.
(유재훈 역, 고려원, 1만5천원)

이 책은 원어로 출판되자 마자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으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플라톤-헤겔-마르크스로 이어지는 역사론적 접근을
거부하고 자연과학 방법론을 적용,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해부를 시도한다.

서로의 눈에 비친 현대 자본주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유럽의 실업률은 천정부지로 뛰어 오르며 미국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몇년째 줄어들고 있다.

또 일본의 낙후된 금융시스템은 세계를 언제 금융공황으로 몰아넣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서로는 이런 자본주의의 세계적 위기상황을 지질학의 "판구조론"과
생물학의 "단속평형설"의 개념을 빌어 설명한다.

경제도 판이 있어 지구판 구조처럼 매년 조금씩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이론이다.

현재 자본주의의 근본을 뒤흔드는 판은 크게 5가지라고 서로는 설명한다.

<>공산주의의 붕괴 <>인공두뇌력 산업과 테크놀러지의 발전 <>인구의
노령화 <>경제의 범세계화 <>냉전체제의 붕괴로 인한 다극화 도래 등이
바로 그것.

5개의 판이 최근 서로 충돌, 지표면에 지진이나 화산폭발같은 심각한
경제적 혼란을 야기한다는 분석이다.

이런 시기엔 생물학적 개념인 단속평형설에서처럼 지배적인 종이 사라지고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

새로운 게임과 규칙이 나타나고 새로운 전략이 요구되는 시기인 셈이다.

결국 누가 먼저 이런 게임에 잘 적응하고 이기는 법을 배우느냐에 따라
승부가 판가름나게 마련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서로는 미래의 승자가 되기 위해 신보수주의자들의 "작은정부론"과는 다른
방법을 추천한다.

정부도 하나의 경제주체인만큼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것.

정부는 소비를 조장하는 대신 미래를 위한 전략을 입안하고 연구개발 교육
인프라 등에 건설자의 입장으로 참여해야 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 책 제목에서 기대되는 자본주의의 미래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놓지 않았다.

미래예측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놓은 것이다.

오히려 그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인정하고 시장경쟁에 참여하는 각
구성원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암시하는데 주력한다.

이 책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기 소르망의 "자본주의의 종말과 새 세기"
(1994)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로는 소르망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

소르망이 슘페터식의 비관론(자본가정신의 후퇴로 인한 자본주의 쇠락)을
경계하는데 그쳤다면 그는 위기극복방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 박준동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