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용 < 창조건축 소장 >

박완서씨의 글을 읽노라면 지금은 잊혀져 버린 심상을 발견하곤 흐뭇해진다.

"모독"이라는 제목이 여행기로는 걸맞지 않아 보이나, 삶 자체가 끊임없는
모독과 인정이라는 모순의 수용이라면, 언제 어느 곳에든지 느낄수 있는
삶의 부분일 것이다.

마음착한 이웃집 아줌마의 볼거리 이야기가 여행기라는 형식으로 쓰여진들,
그분의 숨결이야 감출수 없겠고, 오히려 편한 말로 읽혀지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그 속에 숨겨진 정서가 다가온다.

"모독"은 여행기로서의 기능도 다한다.

그들의 풍속과 보고 느껴야 할 장소 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속된 영상
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독"이 다른 여행기와 구별되는 것은 보는 사람의 심상의 순수함
때문이다.

석굴암에 가보고, 부석사에도 가본다.

건립 연도가 어떻고, 건축 형식이 어떠하며, 지어진 내력을 알아본들,
그 속에서 김대성의 충만한 마음과 의상대사의 불심이 깨달아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시대의 표상물일지라도 보는 자의 충만한 마음이 없으면
또 하나의 절일 뿐이다.

"모독"은 세상의 숨겨진 것을 볼수 있는 충만함과 순수함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준다.

세상은 험하고 힘들고 한스럽지만, 착하고 순수한 마음들에는 그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이 충만한 울림이 되어 다가온다.

감격이 있고 그에 반응하는 정서가 있다면 아직도 이 세상은 아름답고
살아갈 큰 희망이 있지 않을까.

지금 세대에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지식과 규범보다는 잃어버린 정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면, 지금이라도 자기 모독으로, 비워있는 침묵의
마음으로, 앞으로 채워질 충만함을 위하여 이 한 권의 작은 책으로부터
출발하는게 좋을듯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