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웅량 박사는 34세의 나이에 어울리 않는 동안이다.

철학자같은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친근한 형을 닮았다.

그러나 그의 연구에는 철학이 담겨 있다.

훌륭한 연구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만으로 나오는게 아니라고 믿고 있다.

그는 인생 사는 방법을 실험을 통해 배운다.

영국 에든버러 로스린연구소의 아이언 윌머트 박사가 10년간의 연구를 거쳐
복제양 "돌리"를 낳았듯이 그도 유전자 분야에서 한획을 긋기 위해 하루하루
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는 유전자 이식연구를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한다.

"이미 열린 상자 뚜껑을 닫아버린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고 말한다.

오히려 인류의 행복을 위한 선의의 연구가 억제되고 음성적인 연구가 지속될
여지가 크다고 지적한다.

그는 인간복제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것을 오히려 반긴다.

유전자 연구에는 윤리적 사상의 뒷받침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 윤리적 텃밭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는 복제양 탄생이
사람 연구에 윤리적 책임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한다.

휴일 늦은 시간에도 마음대로 퇴근하기가 쉽지 않다.

책상위의 가족사진을 보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조물주의 신비가 풀리는 "그날"이 올때까지는 굳게 실험실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