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경제연구소들이 분석한 12월결산 상장회사들의 지난해 영업실적은
우리 기업들이 최악의 수지악화속에 허덕이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5백8개 상장사의 매출증가율이 전년도의 26.1%보다 크게 낮은 15%에
머물고 특히 순이익은 무려 62.5%나 줄어 10여년 만에 최대의 낙폭을
기록했다는 분석은 국내기업들의 경영사정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입증해준다고 하겠다.

특히 30대그룹의 순이익이 90.1%나 격감했고 일부 대기업그룹들의
수지가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이같은 실적저조는 엔화약세로 수출경쟁력이 떨어진데다 내수경기
부진이 겹치고 환율급변에 따른 외환손실이 크게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수출 주종품목인 반도체의 수출가격폭락이 전체 수지악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실로 볼때 결국 일부 "스타업종"에 의존하는 국내 산업구조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수출업종의 부진이 두드러졌던 원인은 결코 가볍게
보아넘길 일이 아니다.

단순히 엔저 등 해외 요인이라고 풀이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우리경제의 고질병인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조금도 개선되지 않음으로써
임금 금리 땅값 등 생산요소 하나하나가 모두 경쟁력을 잃은 결과라고
봐야 한다.

문제는 이같은 우리기업들의 실적부진이 올해도 쉽게 개선될 것같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국내경기 침체의 가속화와 국제시장여건 악화로 올해는 더 나빠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지배적이다.

기업경영사정이 이처럼 갈수록 악화될 경우 그 결과는 뻔하다.

현상유지에 급급하거나 외부차입을 늘리는 길 뿐인데 어느 경우나
결국 도산으로 이르는 길이다.

이 경우 해당기업은 물론이거니와 국민경제에 엄청난 부담이 된다는
것은 최근의 한보그룹 부도사태를 통해서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교훈이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책적 지원이 절실히 요구된다.

여기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기업의 실적악화가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대책 또한 그런 차원에서 마련돼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오는 20일 발표할 경제살리기종합대책도 바로 기업경영 환경개선에
초점이 두어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고임금 고금리 고지가 고물류비 등을 비롯한 고비용구조를
혁파하기 위한 획기적대책이 필요하며 효율성의 발목을 잡는 각종 규제의
철폐도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아울러 개별기업 차원에서도 경제여건및 경영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순발력있는 경영혁신전략이 필요하다.

장사가 잘 안된다고 하여 맥을 놓고 있거나 연구개발투자 등을 소홀히
한다면 더욱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뿐이다.

기업의 자구노력은 물론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전국민적 동참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