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은행의 중장기 해외자금차입을 자유화하고 기업의 주식연계증권
발행한도를 없애기로 한 것은 원칙적으로 환영할 일이다.

규제완화를 통해 은행과 기업들에 값싼 해외자금의 활용폭을 넓혀주고
외화공급확대를 통한 환율안정과 국내금리하락 등의 장기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차입이 늘어날 경우 통화증발에 따른 물가불안과 외채누적
등의 부작용도 있다.

정부가 그러한 거시경제운영의 위험부담을 안으면서까지 해외차입제한을
완화한 것은 그만큼 최근의 외환 수급사정이 좋지 못함을 반증한다.

사실 외환보유고가 3백억달러 이하로 내려가고 원화환율이 달러당
8백80원대에 육박하는 단기급등세를 보이는 것은 국가경제운영이나
기업경영에 큰 불안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최근의 환율상승은 기본적으로 경상수지적자에서 비롯됐지만
환투기에 의한 가수요의 요인도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인 개입의 필요성은
절실하다고 본다.

정부는 이번 한도철폐로 올해 은행의 1년이상 중장기 해외차입이
40억달러, 기업의 주식연계채권 발행은 30억달러로 지난해보다 15억달러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과연 예상하는 만큼 실효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지 않은
상황이다.

한보사태 이후 국제 금융시장에서 우리나라의 해외신용도가 낮아져
해외자금 차입이 그리 쉽지 않겠기 때문이다.

"코리아 프리미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차입조건이 악화돼 있는
현실이다.

게다가 우리 은행이나 기업들의 자금수요가 별로 크지 않은 상황에서
이같이 불리한 조건으로 다급하게 빌려와야 할 필요도 적다.

다만 언제든지 들여올 수 있는 여력이 생겨 과시효과는 얼마간 기대할수
있을 것이다.

실은 해외차입이 급격히 늘어난대도 문제다.

우선 금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조달에 나설 경우 차입조건을 더욱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

또 과다한 유입이 이뤄질 경우 경상수지는 계속 적자를 지속하는데도
원화 환율은 오히려 평가절상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는 외환 수급측면에서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지 몰라도 교역조건에서
가격경쟁력약화를 초래해 무역적자기조를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투기적요인에 의한 환율상승은 막아야 하겠지만 필요이상의 고평가는
경제에 더 큰 해가 된다는 점도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값싼 해외자금의 활용은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생산적투자로 이어져
경쟁력제고를 통한 국제수지개선에 도움이 될때에만 그 의미가 있지
그렇지 못하면 외채누증만 초래한다.

자금을 들여와 운용하는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이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이다.

또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중소기업들의 자금배분 몫이 줄어들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외환수급안정을 해외차입으로 메우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수출증대를 통한 국제수지균형달성이 근본대책임을 거듭 강조해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