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북한노동당비서가 18일 북경을 떠나 경유지인 필리핀에
도착함으로써 한달여간 지루하게 끌어왔던 황비서의 망명협상이 일단락됐다.

황비서 일행의 "한국직행"이라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관련 당사국인
중국과 북한의 입장을 감안하면 제3국을 통한 한국행은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평이다.

중국은 이번 사건 처리에 있어 <>국제법과 관례에 따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유리한 방향으로 <>자국이 관할권을 갖고 처리한다는 3가지 원칙을
고수해왔다.

또 사건의 관할권이 자국에 있고 한국대사관의 외교적 비호권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유엔고등난민판무관(UNHCR) 등 국제기구의 개입을 허용치 않았다.

중국의 이같은 태도는 앞으로 예상되는 유사사건의 처리에 있어서 중국이
독자적 결정권을 행사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중국측 요구대로 이번 사건을 남북관계에 악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하는 등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중국측에 전달했고 일정기간
제3국에 머물도록 하자는 요구도 수용했다.

따라서 관심은 황비서의 필리핀 체류기간에 쏠려있다.

정부는 황비서 일행을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한국으로 데려온다는 것을
기본 목표로 삼고 있지만 황비서 일행의 서울도착까지는 어느정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중국측과의 최종협상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측의 반발을 의식, 황비서 일행이 이번 사건이 잊혀질 만큼
장기간 필리핀에 체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한국입국 시기에 대해서도 사전 협의를 하는 조건으로 황의 필리핀행을
허가한 것으로 알려져 황의 한국행을 둘러싼 한중 협상은 이제부터
"제2라운드"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황의 필리핀 체류가 장기화될 경우 북한측 테러 등 신변안전문제가
우려되는데다 74세의 고령인 황의 정신적, 육체적 상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황의 조속한 한국행을 위해 외교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정부는 특히 황비서 일행의 신변에 대한 우려가 가시화되거나 건강상의
문제가 제기될 경우 즉각 서울로 데려올 수 있도록 중국측에 분명히 밝혀둔
것으로 알려져 이들의 한국입국시기가 예상보다 빨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고위당국자도 황비서 일행의 필리핀 체류 기간과 관련, "최소한 2주일
정도 걸릴 것이며 길어야 한달 정도 될 것"이라면서 "그러나 상황변동이
생길 경우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때 황비서 일행은 빠르면 이달말께, 늦어도 다음달
중순까지는 한국에 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황비서의 망명협상은 앞으로 예상되는 북한 고위인사를 포함한 북한
주민들의 탈북.망명처리에 주요한 선례로 북한인 망명처리를 위한 한중
외교교섭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 이건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