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는 뒤뚱거리면서 걷는다.

그런 오리가 절름발이라면 그 걷는 모습이 어떻겠는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기말 통치자의 권력누수를 흔히 "레임 덕(lame duck)현상"이라고
표현한다.

영어의 뜻을 그대로 옮기면 "절름발이 오리"다.

원래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서 실패한 경우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 3개월동안 국정의 정체상태가 빚어지기 쉽기 때문에 기우뚱거리는
오리에 비유한 말이라고 한다.

요즈음 공무원들의 기강이 무너지고 일처리가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본분을 망각한 근무자세에서부터 민원처리가 늦고 책임회피가 많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는 커녕 현실에 안주하는 무사안일분위기가
팽배하다는 것은 누구나 한마디씩 하는 얘기다.

연말의 대통령선거를 앞둔 임기말의 레임 덕 현상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사실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한보사태와 대통령 차남 현철씨의 국정개입 등 특혜 비리사건이 연일
증폭되고 있는 마당에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만 있으니 공무원인들
신바람이 날리가 없을 것이다.

특혜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관료집단은 도매금으로 매도의 대상이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깃털"에 불과한 하급공무원들만 처벌받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고 보면 동정심까지 생긴다.

여기에 최근들어서는 몇달이 멀다하고 장관이 바뀌고 인사가 이뤄지니
공직사회의 불안감은 증폭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그러나 시국이 아무리 어수선하다고 해도 공직자들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지금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점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집단이 관료들이다.

굳이 공복의식을 들먹이고 국민의 세금인 국록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구태의연한 당위성을 강조할 생각은 없다.

다소 과장된 표현일지 몰라도 지금은 온 나라가 구심점도 없고 권위가
땅에 떨어져있다.

국민들의 생각과 주장은 모래알처럼 흩어져 서로가 서로를 탓하는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고 답답하다는 심정은 혼자만 느끼는 것일까.

이런때에 공직자들이 무사안일과 책임회피에 빠져든다면 큰일이다.

다소간의 예외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기구개편
감원 등 제살을 도려내는 일들을 겪고 있고 근로자들은 임금동결을 결의하는
판국이다.

경제살리기에 앞장서 뛰어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을만한 요즈음이다.

그만큼 경제난은 심각하다.

지난 94년 미국의 플크루그만 MIT대교수가 한국의 경제전망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를 발표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방식은 자본과 노동을 쏟아부은 지난
60년대초의 소련 및 동구권의 그것과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본과 노동이란 생산요소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존재하므로 조만간
성장률도 대폭 하락하리라고 예측했었다.

물론 이에대한 논리적 모순 등을 반박하고 의견도 만만치 않았지만 어쨌든
요즈음 상황을 보면 크루그만 교수의 예측대로 돼가는 것같아 불안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사실 우리 경제를 단기간에 회생시킬 묘안은 없다.

크루그만 교수가 비관론의 근거로 제시한 생산요소의 수확체감법칙을
일축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과 산업구조의 개편이 과감하게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이는 생산요소의 효율성을 높여 수확체감이 아닌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눈앞의 시련에 너무 얽매여 한숨만 쉬고 있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이런때 일수록 보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구상을 다듬는 일이 더
중요하다.

이것 역시 정부가 해야 할 일중의 하나이고 공직자들이 해법찾기에
골몰해야 되는 일이 아닌가 싶다.

다소 엉뚱한 것이지만 이런 생각도 해본다.

신경제 계획으로 대체돼 버린 과거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계속 됐다면
경제난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5개년 계획을 짜다보면 장기안목에서의 경제운영이 가능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 측면에서도 보탬이 됐으리라고 믿는다.

정권은 바뀔지라도 정부의 기능은 일관성을 지녀야 한다.

이것 또한 직업관료들의 책무가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소생시키는 일이다.

이는 위기관리 능력을 갖춘 정치지도력의 회복과 국가를 지켜가는
공직자들의 솔선수범이 절실하다.

지도자는 "희망을 파는 고인"이라고한 나폴레옹의 얘기가 실감나게 들리는
요즈음이다.

막연히 우리는 저력이 있다거나 고비때마다 잘 극복해온 과거의 예를
위안 삼는 일은 너무 안이한 발상이다.

다만 국민 전체가 좀더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울분만 터트려가지고는 미래가 없다.

남을 탓하고 욕하기 전에 각자 맡은 일에 좀더 충실하자는 제안 아닌
제안을 해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