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이 고용안정을 전제로 올 임금을 "동결"키로 한 것은 근로자들에게
고용을 보장해 줄테니 대신 임금을 양보해 달라는 주문으로 해석된다.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고개숙인 아버지"를 더이상 만들지
않으려면 임금총액 동결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호소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임금총액을 동결하기 위해선 신규채용을 줄이는게 필수적
이어서 사회 전반의 실업증가라는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기도 하다.

경총의 임금동결 선언은 기본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는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고육책으로 볼 수 있다.

고비용의 주범중 하나인 임금을 묶지 않고는 경제회생도, 이를 위한
경쟁력 강화도 공염불이란 경영계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경총의 임금 가이드라인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적용된다는
점에서 30대 그룹의 임금동결 선언과는 차원이 다른 셈.

그만큼 경제현실을 바라보는 경영계의 입장이 다급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경총은 임금동결이란 "채찍"과 함께 "당근"으로 고용안정을 제시하고
있다.

임금총액 동결을 선언하며 고용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강조한게
그렇다.

근로자들이 임금동결을 감내해 준다면 경영계도 감원등 무리한 인원감축은
않겠다는 얘기다.

뒤집어 생각하면 명예퇴직 등 감원으로 인한 사회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선
임금동결이 필수 불가결이란 논리다.

"지금과 같은 저성장 시대엔 근로자들이 고용안정이냐 아니면 임금인상이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조남홍 경총부회장)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경총은 또 경영계 스스로도 근로자들의 임금동결에 상응하는 수범을
보이겠다고 약속했다.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가계 소비지출을 10% 줄이고 임금의 10%를 반납토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경총 회장단회의에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총은 이같은 지침을 각 기업에 공고해 최고경영자 뿐아니라 임원급에까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경영자나 근로자 모두가 경제회생을 위해 허리 띠를 졸라매자는 얘기다.

그러나 이같은 경총의 임금동결 의지가 현장에서 얼마나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노총과 민주노총이 18.4%와 10.6%라는 고임금 가이드라인을 이미 제시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경영자와 노조는 각각 경총과 노동계의 임금가이드라인에서
협상을 시작하는데 올해의 경우 양측주장이 출발점부터 워낙 달라서다.

특히 대기업에 비해 턱없이 임금이 낮은 중소기업들에까지 이같은 동결
요구가 어느정도 먹혀들어갈지는 미지수다.

또 기업들의 임금총액 동결은 신규채용 감소를 전제로 하지 않고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부담이 되는 대목이다.

이 경우 신규인력의 구직난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예상이다.

기존 인원을 줄이지 않고 임금총액을 동결하려면 오히려 호봉승급 등
인건비 자연증가분 만큼을 어떤 식으로든 해소해야 하는데 채용축소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경비절감 등의 방법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이 점은 경총도 인정하고 있다.

신규채용 축소로 인한 실업증가는 정부가 사회 정책적 차원의 보완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게 그런 맥락이다.

어쨌든 경제위기의 탈출구로 임금동결이란 특단의 선택을 한 경영계는
근로자들이 최근의 경제상황을 직시해 합리적인 판단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은 이제 더이상 동일 티켓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근로자들이 인식해 주길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 차병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