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9년 중종 14년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있었다. ‘서민들’이 인식하는 스토리는 이렇다. 연산군 폭정에 대한 반정으로 진성대군이 새 임금에 오른다. 반정공신들의 전횡과 부패가 누적되고, 조광조가 리더인 정통 성리학 신진 사림(士林)이 부상한다. 반정공신 포함 훈구세력은 ‘조광조 사림’이 위훈삭제(僞勳削除) 등 개혁을 추진하자 기묘사화를 일으키는데, 이른바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이 방아쇠가 된다. 몰래 궁궐 나뭇잎에 꿀물로 ‘走肖爲王’이라고 쓰니 벌레들이 그 글자들을 따라 나뭇잎을 갉아먹었고 그걸 중종에게 보여줬다는 것. ‘走肖’는 ‘趙’(조)의 파자(破字)로서 ‘조위왕(趙爲王)’, 곧 ‘조씨 성을 가진 자(조광조)가 왕이 된다’는 뜻. 여기에, 사림은 억울한 죽임을 당한 선(善), 훈구는 절대악이라는 대립구도가 얹혀진다.그러나 기묘사화에 관한 학문적 견해는 이미 다양하다. 선과 악만으로는 규정이 어려운 훈구와 사림의 관계, 사림의 훈구와 다르지 않은 출신성분(예컨대 조광조는 건국공신 집안 한양 토박이다. 가난한 지방선비가 아니었다.), 관료특채인 현량과(賢良科)를 신설하고 주도한 사림의 당파적 내로남불과 급진성, 중종 개인의 심리상태 등등. 하지만 지금 하려는 얘기는 ‘오직’ 주초위왕, 벌레들이 작문하며 갉아먹었다는 그 나뭇잎에 관해서다. 어릴 적 이 야사를 처음 접했을 때 ‘그게 정말 가능한가?’ 의심이 들었더랬다. 아니나 다를까, 과거 공영방송 역사다큐에서 치밀하고 폭넓게 실험을 해본 결과, 어떤 경우에도 벌레들이 사람의 의도대로 나뭇잎을 갉아먹으며 글씨를 쓰는 일은 &lsq
올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유상증자 공시가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해가 바뀐 지 50일이 넘었지만 새로 유상증자에 나선 유가증권시장 상장 기업은 태영건설 한 곳뿐이다. 코스닥시장에서 21개 기업이 유상증자를 하겠다고 밝힌 것과 대비된다.지난해로 범위를 넓혀도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4년 유가증권시장에서 8개 기업이 2조617억원을 유상증자로 조달했다. 2023년 5조2659억원 대비 60.8% 급감한 것이다. 같은 기간 코스닥 상장사의 유상증자 규모는 33.6% 늘었다.금감원 눈치 보는 대기업들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중심의 코스닥 상장사와 비교해 대기업이 많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자금 사정이 좋아 유상증자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회사채 발행 규모는 전년 대비 44조원 늘었다. 기업어음(CP) 발행은 26조원, 단기사채 발행은 12조원 증가했다. 올해 들어서도 LG에너지솔루션이 1조6000억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하는 등 채권시장을 통한 대기업 계열사의 자금 조달이 확대되고 있다. 규모가 큰 기업이라고 내수 경기 불황의 깊은 골과 글로벌 불확실성의 높은 파도를 피해 갈 수는 없다.대기업의 유상증자 기피 현상에 대해 자본시장에서는 이복현 금감원장의 압박을 이유로 든다. 기업금융을 담당하는 한 증권사 관계자는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에 대한 금감원의 심사가 까다로워져 기업들이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며 “지난해 말부터는 관련 문의조차 끊긴 상황”이라고 전했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정부 압박에 따른 부담이 커 유상증자 때 더 눈치를 보게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나온다.실제로 유상증자를 발표한 코스닥 기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최신 제품(HBM3E 12단) 양산 계획을 공개한 건 지난해 9월 대만에서 열린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전시회 ‘세미콘 타이완’에서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2027년에 10나노 미만 D램을 출시하겠다”고 발표한 장소도 같은 곳이었다.한국을 대표하는 반도체기업이 ‘TSMC의 나라’에서 핵심 기업 정보를 공개한 것이다. 시장에 영향을 주는 민감 정보인 만큼 곧바로 전 세계에 퍼졌고, 관련 기업 주가는 요동쳤다. 마이크론, 구글, 엔비디아, 브로드컴 등 세계 최고 반도체기업들의 거물급 인사들도 이 행사에서 의미 있는 얘기를 쏟아냈다. 그렇게 대만은 ‘신(新) 반도체 수도’가 됐다.그때 대만에서 했던 행사가 지난 19일부터 한국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세미콘 코리아 2025’다. 세미콘 행사는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주관으로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매년 열린다.하지만 행사장 분위기는 대만과 영 딴판이었다. ‘빅샷’이라곤 기조연설에 나선 송재혁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사장) 정도였다. 그나마 귀에 쏙 들어오는 ‘뉴스’ 없이 원론적인 얘기에 그쳤다. AMD,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등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였다.지난해 세미콘 타이완을 찾은 글로벌 ‘반도체맨’들이 TSMC 등 대만의 기술력을 치켜세우며 “함께하자”고 ‘러브콜’을 보낸 장면은 코엑스에선 연출되지 않았다.국내 반도체업계 사람들은 “반도체 시장의 ‘뜨는 별’ 대만과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