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삼미'] 극비리 작업 .. 법정관리신청 뒷 얘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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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그룹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룹의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지난주말께 법정관리 신청 방침을 결정했으며 실무팀을 구성, 극비리에
작업을 진행해 왔다.
지난 13일 (주)삼미가 1차 부도가 난 후 다음날 이를 겨우 막기는 했으나
앞으로 돌아올 어음을 자력으로는 결제하기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법정
관리 신청을 택했다는 했다는 것.
이 과정에서 김현배회장은 미국에 체류중인 친형 김현철 전회장에게 연락,
그룹의 지분을 소유한 형제 및 친인척들이 모두 주식포기각서에 서명하도록
했다.
한보그룹의 정태수 총회장이 마지막 순간까지 경영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주식포기각서 서명을 거부, 계열사 연쇄부도를 맞은 것과 대조적으로 삼미의
오너들은 별다른 갈등없이 경영권 포기에 동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미그룹은 당초 삼미특수강과 (주)삼미 삼미금속 삼미기술산업
삼미화인세라믹 등 5개계열사에 대해 일괄 법정관리신청에 들어가기로
하고 18일 밤 10시경 고문변호사를 통해 서울민사지법에 서류를 제출했으나
삼미금속 삼미기술산업 삼미화인세라믹 등은 서류미비로 접수가 반려됐다는
후문이다.
그룹은 채권은행단과 사전 의견조율이나 관계당국과의 협의는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신빙성이 낮다는 것이 그룹주변의
시각이다.
<>.기업경영에 실패,계열사들을 끝내 법정관리신청한 김현배회장은 19일
기자회견을 하면서 시종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김회장은 "창업주와 전임회장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아 43년이나 된 기업을
잘 키우지 못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된데 대해 주주와 종업원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
<>.삼미그룹 본사는 법정관리 신청사실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19일 대체적
으로 별다른 혼란없이 업무를 계속하는 모습.
그러나 기획 자금 등 주요 부서와 홍보 등 대외관련 부서에는 법정관리
신청여부를 확인하는 전화가 쇄도해 직원들이 답변에 진땀을 빼기도.
삼미그룹은 18일 업무시간중에 (주)삼미 등에 대한 법정관리 신청을 하려
했으나 서류미비 등으로 차질을 빚어 오후 11시께야 겨우 법원에 서류를
제출할 수 있었으며 이 때문에 관계자들이 밤늦게까지 퇴근하지 않고 대기.
<>.삼미그룹의 부도는 한국 기업 부도 사상 가장 길었던 부도로 기록될
것 같다.
삼미는 지난 83년부터 자금이 악화되기 시작해 을지로 삼일빌딩을 매각
하는등 자구 노력을 시작했고 이후 계속되는 자금악화로 고전해 왔다.
이 과정에서 방배동 본사를 팔고 야구단을 헐값에 처분하는등 줄기찬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이기지 못해 결국 비운의 최후를
맞게 된 것.
최근에는 포항종합제철에 봉강공장을 매각해 약 6천억원의 은행빚을 꺼기도
했으나 주거래 은행인 제일은행이 더이상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부도 처리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삼미는 지난 83년 부터 자금악화에 시달린 끝에 14년만에 제대로
회생의 기회조차 잡지 못한채 고난의 역정을 청산하게 된 셈.
금융계에서는 통상 부도가 날 경우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는 싯점부터 대략
1년 또는 2년 정도면 부도처리도는게 상례지만 삼미의 경우 이처럼 오랜
시일이 걸린 것은 자금도 자금이었지만 경기의 장기적인 침체와 경영전략
판단 착오가 더욱 컸다고 분석.
<>.삼미그룹에 대한 법정관리신청은 지난주말 결정됐다는 후문.
이미 지난달초부터 자금압박을 받던 삼미그룹은 그동안 주거래은행의 지원
으로 근근히 어음을 결제해 오다 지난 13일에는 1차부도를 내기도.
이때부터 제일 상업은행등 채권은행들은 삼미특수강의 "최종처리"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으며 14일께 삼미그룹에 법정관리방침을 통보했다는 것.
삼미그룹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 경영권포기각서제출과 함께
법정관리에 동의했다는 후문.
이 과정은 정지태 상업은행장과 유시열 제일은행장이 주도했으며 청와대와
정부 은행감독원등에는 사후보고를 했다고 유행장은 설명.
따라서 삼미그룹처리과정에서 외부의 입김을 받은 적은 없으며 순전히
채권은행차원의 결정이었다는게 관계자들의 주장.
금융계에서는 그러나 이미 지난주 중반 정부차원의 대책회의가 열렸으며
이를 눈치챈 외환은행의 지급거절로 삼미특수강이 1차부도를 냈다는 설이
유력.
즉 정부가 주도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다해도 어쨌든 정부입장을 전달
했다는 것.
이같은 상황이 빚어진 것은 한보사태로 정부당국자들이 몸을 사리고
있는데다 채권은행들도 적극적인 은행방어에 나선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0일자).
지난주말께 법정관리 신청 방침을 결정했으며 실무팀을 구성, 극비리에
작업을 진행해 왔다.
지난 13일 (주)삼미가 1차 부도가 난 후 다음날 이를 겨우 막기는 했으나
앞으로 돌아올 어음을 자력으로는 결제하기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법정
관리 신청을 택했다는 했다는 것.
이 과정에서 김현배회장은 미국에 체류중인 친형 김현철 전회장에게 연락,
그룹의 지분을 소유한 형제 및 친인척들이 모두 주식포기각서에 서명하도록
했다.
한보그룹의 정태수 총회장이 마지막 순간까지 경영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주식포기각서 서명을 거부, 계열사 연쇄부도를 맞은 것과 대조적으로 삼미의
오너들은 별다른 갈등없이 경영권 포기에 동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미그룹은 당초 삼미특수강과 (주)삼미 삼미금속 삼미기술산업
삼미화인세라믹 등 5개계열사에 대해 일괄 법정관리신청에 들어가기로
하고 18일 밤 10시경 고문변호사를 통해 서울민사지법에 서류를 제출했으나
삼미금속 삼미기술산업 삼미화인세라믹 등은 서류미비로 접수가 반려됐다는
후문이다.
그룹은 채권은행단과 사전 의견조율이나 관계당국과의 협의는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신빙성이 낮다는 것이 그룹주변의
시각이다.
<>.기업경영에 실패,계열사들을 끝내 법정관리신청한 김현배회장은 19일
기자회견을 하면서 시종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김회장은 "창업주와 전임회장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아 43년이나 된 기업을
잘 키우지 못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된데 대해 주주와 종업원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
<>.삼미그룹 본사는 법정관리 신청사실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19일 대체적
으로 별다른 혼란없이 업무를 계속하는 모습.
그러나 기획 자금 등 주요 부서와 홍보 등 대외관련 부서에는 법정관리
신청여부를 확인하는 전화가 쇄도해 직원들이 답변에 진땀을 빼기도.
삼미그룹은 18일 업무시간중에 (주)삼미 등에 대한 법정관리 신청을 하려
했으나 서류미비 등으로 차질을 빚어 오후 11시께야 겨우 법원에 서류를
제출할 수 있었으며 이 때문에 관계자들이 밤늦게까지 퇴근하지 않고 대기.
<>.삼미그룹의 부도는 한국 기업 부도 사상 가장 길었던 부도로 기록될
것 같다.
삼미는 지난 83년부터 자금이 악화되기 시작해 을지로 삼일빌딩을 매각
하는등 자구 노력을 시작했고 이후 계속되는 자금악화로 고전해 왔다.
이 과정에서 방배동 본사를 팔고 야구단을 헐값에 처분하는등 줄기찬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이기지 못해 결국 비운의 최후를
맞게 된 것.
최근에는 포항종합제철에 봉강공장을 매각해 약 6천억원의 은행빚을 꺼기도
했으나 주거래 은행인 제일은행이 더이상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부도 처리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삼미는 지난 83년 부터 자금악화에 시달린 끝에 14년만에 제대로
회생의 기회조차 잡지 못한채 고난의 역정을 청산하게 된 셈.
금융계에서는 통상 부도가 날 경우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는 싯점부터 대략
1년 또는 2년 정도면 부도처리도는게 상례지만 삼미의 경우 이처럼 오랜
시일이 걸린 것은 자금도 자금이었지만 경기의 장기적인 침체와 경영전략
판단 착오가 더욱 컸다고 분석.
<>.삼미그룹에 대한 법정관리신청은 지난주말 결정됐다는 후문.
이미 지난달초부터 자금압박을 받던 삼미그룹은 그동안 주거래은행의 지원
으로 근근히 어음을 결제해 오다 지난 13일에는 1차부도를 내기도.
이때부터 제일 상업은행등 채권은행들은 삼미특수강의 "최종처리"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으며 14일께 삼미그룹에 법정관리방침을 통보했다는 것.
삼미그룹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 경영권포기각서제출과 함께
법정관리에 동의했다는 후문.
이 과정은 정지태 상업은행장과 유시열 제일은행장이 주도했으며 청와대와
정부 은행감독원등에는 사후보고를 했다고 유행장은 설명.
따라서 삼미그룹처리과정에서 외부의 입김을 받은 적은 없으며 순전히
채권은행차원의 결정이었다는게 관계자들의 주장.
금융계에서는 그러나 이미 지난주 중반 정부차원의 대책회의가 열렸으며
이를 눈치챈 외환은행의 지급거절로 삼미특수강이 1차부도를 냈다는 설이
유력.
즉 정부가 주도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다해도 어쨌든 정부입장을 전달
했다는 것.
이같은 상황이 빚어진 것은 한보사태로 정부당국자들이 몸을 사리고
있는데다 채권은행들도 적극적인 은행방어에 나선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