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박사는 미소까지 띤 얼굴로 그녀를 바라본다.

이름은 제인,성은 김씨다.

"제인이라고 부를까요, 한국식으로 미스 김이라고 부를까요?"

공박사도 서구식 매너로 나온다.

일년동안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최신 정신의학에 대한 연구를 하고 온 그녀는
누구보다도 영어를 잘 알아들을 수 있고 또 미국 젊은이들의 의식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한국말을 잘 하는데 제인은 거의 외국에서 자랐군요"

제인은 호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7년, 프랑스에서 3년, 남미에서도 6년,
이렇게 한국에서는 초등학교에서 3년을 지냈을 뿐인데도 유창하게 한국말을
잘 한다.

아이큐는 높은 것 같다.

"직업도 가졌었군요? 항공사 승무원생활도 하시구. 경력이 화려하십니다.
결혼한지는 몇년간 되었습니까?"

"결혼하자 이혼상태로 3년이 넘었어요. 딸도 있어요. 나도 고치고 싶어요.
마약의 종점이 죽음이라는 것은 저도 잘 알아요. 그런데 왜 왔냐구요?"

그녀는 상당히 느린 톤으로 말한다.

"취미는 무엇이지요?"

공박사는 진지하게 그러나 부드럽게 물었다.

제인은 실실 웃다가,

"남자하고 자는 거요. 그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까 자꾸 실수를 하게 돼요"

그때 어머니는 눈물이 글썽해진다.

"그런 문제 때문에 왔어요"

하고 제인이 또 공허하게 웃는다.

"남편은 지금 어디 있죠? 제인"

공박사는 빠르게 묻는다.

"지금 그 치는 미국에 있어요. 나를 원수보듯 하니깐요. 이혼장에 도장을
찍으래는데 내가 위자료 때문에 해결이 안 돼서 사인 안 해요. 그 인간은
나를 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 대한 의무까지도 안하려고 해요. 나에게
문제가 생기면 아이를 맡아 주어야 하는데 어디로 도망가서 숨었어요"

그녀는 갑자기 격앙된 목소리로 외쳐대며 몸부림친다.

"나는 죽고 싶어도 우리 메어리 때문에 못 죽어요. 아셨죠, 엄마? 그 애는
부르스가 돈을 보내줘야 하는데 나는 소송을 하고 있어요, 미국에서.
그러니까 나는 미국으로 돌아가야돼요"

"부인, 따님을 미국으로 돌려보내시지 그러세요"

"선생님! 우리 그 이는 공무원이랍니다. 우리 봉급으로는 결코 그 애의
미국 체류비를 댈 수가 없어요. 그래서 병을 완쾌시키더라도 한국에서 같이
데리고 있으면서 건강인으로 재기시켜 보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다음은 말하지 말아. 내가 할 수 있어. 그것은 의사들이 섹스중독으로
다루는 부분이니까. 골치 아픈 변명이나 고백은 할 필요도 없어. 엄마,
엄마는 좀 나가 줄래. 내가 의사와 단독으로 면담할게"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