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가 쌓이는 재고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수출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철강 유화등 일부 기초소재류를 제외하곤 대부분
업종이 6개월 넘게 재고조정이 이뤄지지 않아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재고는 지난달말 현재 8만8천4백3대.

지난해말 10만대가 넘던 재고를 무이자 할부판매라는 "극약처방"으로
털어냈지만 이달들어 다시 10만대를 향해 치닫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내수판매가 극도로 악화되자 계열사에 재고를 떠넘기는가
하면 몇몇 차종에 대해서는 할부금리인하등 판매조건을 대폭 완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노동법 관련 파업으로 1월 한달 생산량이 거의 없었는데도
이정도면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며 "생산물량을 가능한한 수출로 돌린다지만
가격경쟁력 약화로 이것 또한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재고 몸살은 전자업계도 마찬가지다.

가전의 경우 적정 유통재고가 30일분이지만 지금은 45일분이 재고로 쌓여
있다.

적어도 30%는 공급과잉상태라는게 업계의 분석이다.

경기의 선행지표가 되고 있는 공작기계의 수주및 출하도 극히 부진하다.

공작기계업계는 현재 2만대이상의 재고를 안고 있다.

특히 한달 생산량의 재고 보유를 적정수준으로 보는 범용기의 재고는
1만9천대로 생산량의 4배에 육박하고 있다.

업계는 범용기가 주로 영세기업에서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할때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경기는 한동안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점치고 있다.

섬유도 분위기는 같다.

현재 직물재고는 7천6백만평방m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 많다.

그나마 이 정도의 증가에 그친 것은 생산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라는게
업계의 분석이다.

의류 또한 재고가 늘어 신제품이 나와도 곧바로 할인판매에 들어가는
출혈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완성차메이커들이 가동률을 낮추면서 대부분 협력업체들의 재고는 평소보다
50%가량 늘어나 있다.

설비 가동을 줄이고 있으나 이또한 여의치 않다.

피아노업체들의 경우 삼익악기 부도에다 미국 호주시장 수출부진이 겹치면서
평상시의 2배에 달하는 1백억원어치의 피아노가 재고로 남아 있다.

재고 누적으로 금융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게 아니다.

공장 가동률을 낮추면서 임금은 임금대로 지급해야 하는 까닭에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더욱이 "금융대란설"의 여파로 운영자금을 구하기가 어려워져 이달들어
하루 평균 22개의 업체가 부도를 내고 있다.

경기가 안좋기는 마찬가지였던 지난해도 하루 평균 부도업체수는 17개에
불과했다.

숫자도 숫자지만 대형업체들이 쓰러지고 있다는게 더 큰 문제다.

업계의 노력에도 재고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은 대규모 설비투자에
따른 고정비 부담으로 공장 가동이 불가피한데다 고용조정 또한 여의치
않은데 따른 것이다.

재고가 쌓여도 공장이 돌아가면 국민총생산은 늘어나고 성장률도 높아지는
외화내빈격의 기형적인 성장이 계속된다.

업계는 무엇보다 "빈껍데기 성장"속의 산업기반 침하를 우려하고 있다.

< 김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