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박사는 제인의 유난히 길고 고운 손을 본다.

그리고 클레오파트라를 닮은 잘 생긴 코를 본다.

높으면서도 기품있는 그녀의 코는 정말 일품이다.

그녀의 손끝에는 연분홍의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을 싫어하는 공박사도 그녀의 길쭉한 손가락끝에 칠해진
그 엷은 핑크빛 매니큐어는 빨아먹고 싶은 체리의 유혹처럼 도발적이다.

그러나 그녀는 얼른 정신을 차리면서, "제인, 왜 한국에서 룸살롱에 나가요?

그것이 알려지면 아버지는 어떻게 될까요?

아버지의 명예 실추는 곧장 제인의 집의 비극으로 연결되는, 한국은 그런
나라가 아닙니까?"

"알고 있습니다, 닥터.

그러나 저는 스물일곱이고 섹스의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었어요.

미국에서도 그것이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지만 아무튼 저는 섹스를
즐기면서 돈도 벌고 그런 생활에 아무 거리낌도 없어요.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에이즈검사는 자주 하고 있고요"

"에이즈가 무서워요?

당신의 경우에는 섹스와 돈과 약이 에이즈보다 더 심각하다고 봐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처음에 약은 어떻게 해서 시작했지요?"

"네.

클라스메이트인 빌리가 나의 처음 남자인데, 그 애는 나에게 마리화나를
감아 피우는 법과 섹스가 얼마나 황홀한 것인가를 가르쳐주었어요"

그녀는 글썽하게 눈물이 고이면서, "그런데 이 애가 코카인을 하고 섹스를
하면 더 자극적이라고 했어요.

그때 나는 열일곱이었고 잘 생긴 백인 애가 나와 놀아주는 것이 신났어요.

더구나 금발에 푸른 눈을 한 빌리가 황인종인 나와 애인사이인 것이 너무
자랑스러웠어요.

미국에서는 동양애들은 동양애들끼리 밖에 러브메이킹이 잘 안 돼요.

끼리끼리 노는 것이죠.

빌리는 지금 죽었어요"

그녀의 코끝에 제어가 잘 안 되는지 콧물이 흘러나와 있다.

독감까지 걸려 있나보다.

공박사는 얼른 휴지를 건네주며 콧물을 닦게 한다.

여러 금단현상이 제인의 행동에서 보이자, 공박사는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미 그녀는 콧물뿐 아니라 자기의 인생을 제어할 능력이 상실된 것 같다.

썩어가는 꽃을 보듯 공박사의 가슴은 쓰라리다.

"빌리는 나와 동거생활을 하면서 집에서 돈을 훔쳐오고 나에게도 콜걸을
시켰어요.

나는 몸을 판다는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빌리와 같이 점점 강도높은 코카인과
마약에 중독되어 갔어요.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를 명문대학에 넣어놓고 아프리카에 가 계셨어요.

그러니 나에 대해서 알 수가 없었지요"

공박사는 환자의 말을 절대로 끊지 않는다.

호기심과 지대한 관심을 연출하면서 녹음기에 그녀의 고백을 녹음시키기
위해 스위치를 넣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