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공업계는 새로운 공정기술적용에 대단히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

실제 공장을 지어 운전해보지 않은 공정기술은 아무리 우수하다 할지라도
적용대상에서 일단 제외하고 본다.

현장운전경험을 통해 최종제품생산의 안정성을 검증받은 기존기술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막대한 시설투자비가 한목에 들어 중도포기하는데 따른 손실요인이 큰
장치산업이기 때문이다.

이는 오랫동안 현장운전경험을 쌓은 일부 화공선진국이 원천공정기술을
독점하고 기술대여만으로도 적잖은 돈을 벌고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화공산업 역사가 짧아 원천기술을 외국에 의존해야 한다고 해서 실망할
것만은 아닙니다. 원천기술의 부가가치를 높여 틈새시장을 파고들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삼성엔지니어링 기술연구소 화학공정개발파트 유용호(38)박사는 외국
원천기술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한 화공엔지니어링기술입국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그는 지난 90년 러시아로부터 들여온 "2단계 개질법에 의한 합성가스제조
공정"을 우리고유의 것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는 천연가스, 나프타, 액화석유가스(LPG)등을 원료로 암모니아 메탄올
카프로락탐 옥탄올등의 기초원료인 일산화탄소와 수소가스를 만드는 공정.

그는 원래의 공정보다 장치크기를 20% 줄이고 에너지사용량은 20%, 화학
반응에 필요한 수증기 투입량은 40%가량 절감할수 있는 기술을 접목,
시스템설계를 완성해 냈다.

또 최종제품인 일산화탄소와 수소의 혼합비율을 자유자재로 조절할수
있도록 해 고객수요에 맞는 "맞춤공장" 건설도 가능케 했다.

이 기술은 지난해 중국 신강성 우르무치에 건설될 연산 15만t 규모의
플랜트수출로 결실을 맺었다.

핵심기기제조와 시스템설계비용으로 1천만달러를 받았고 유사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영국의 ICI사 등과 겨뤄 따낸 것으로 "도약단계"에 있는
우리나라 화공엔지니어링 기술수준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현재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공동으로 시화공단내에 세운 파일럿플랜트
에서 "3단계 개질법을 적용한 합성가스제조공정" 개발에 힘을 모으고 있다.

이 기술은 효율성제고와 초기투자비의 대폭적인 절감을 유도할수 있어
우리나라 엔지니어링 기술수출의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원천공정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지의 성공률은 10%선에 불과합니다. 많은
투자비용과 위험부담은 후발국의 기술개발을 어렵게 하지요. 관련기술을
하나씩 적용해 가며 오랜기간 운전경험을 쌓는 것밖에 달리 길이 없지만
무작정 기다릴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는 이를 위해 국내에서 개발된 기술을 신뢰하고 채택해 주는 도전적
자세와 일관된 정책적 지원의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김재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