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측이 극비리에 청문회대책을 추진하고 비자금을 조성해 해외로
빼돌렸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는 등 김씨관련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여권은 시중에 나돌고 있는 설을 모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하고
있으나 자고나면 불거져 나오는 각종 의혹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야권은 한보비리와 김씨의 2천억원 리베이트 수수의혹 등을 한데 묶어
김영삼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힌다는 전략하에 연일 공세의 고삐를
죄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24일 김씨 사조직이 청문회 대책을 치밀하게 준비해온
사실을 입증하는 문건이 폭로되자 그동안의 여러 음해공작 진원지가 밝혀졌다
며 일제히 비난을 퍼부었다.

양당은 김씨 사조직에 의한 야당총재 음해공작의 실체가 드러났다고 보고
국회한보사건 국정조사특위에서 김씨의 국정개입의혹중 하나로 이 문제에
대해서도 집중 조사키로 했다.

양당은 특히 김씨측에서 야당총재들을 겨냥해 맞불작전을 계획한 사실로
미뤄 김씨측이 청문회 등에서 야권지도부에 대한 폭로전으로 맞대응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보고 국조특위 활동기간연장, 증인 추가채택및
조사방법수정 등의 대응책도 강구키로 했다.

국민회의는 이날 간부회의에서 김씨 사조직의 음해공작이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 강삼재 전 신한국당 사무총장 김철 전 신한국당 대변인 등을 통해
이뤄졌다고 규정했다.

자민련도 이와관련, 김대통령과 사정당국은 김씨를 에워싸고 있는 주변
인물들이 더이상 국민을 걱정시키고 나라를 좀먹는 행위를 할수 없도록
모조리 색출해 의법처리해야 한다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이규양 부대변인은 "겁없는 아이들이 의도한대로 한보사건에 또다시 정치권
을 끌어들여 김씨파문을 희석시키거나 양비론으로 몰고가서는 결코 안된다"며
"나아가 김씨의 국정문란 행위와 비리의혹은 하루속히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와 그 측근의 자금 해외은닉설도 전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사안은 지금까지 제기된 김씨관련 의혹중 가장 폭발력이 강한데다 일부
라도 사실로 드러날 경우 김대통령을 비롯한 여권핵심부에 직격탄을 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진위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국민회의는 이날 김씨비리 고발창구를 통해 매일 새로운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비자금 조성및 자금 해외도피 의혹이라고 밝혔다.

국민회의의 한 고위관계자는 "김씨가 개입된 자금 해외은닉에 관한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며 "국회한보특위 위원들이 금융기관보고나 한보 등 관계
증인들의 신문때 이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민회의측은 특히 김씨의 잦은 외유와 자금 해외은닉에 상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청문회 등에서 외유기간중의 행적을 집중 추궁할 계획이다.

법무부 출입국자료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94년 두차례, 95년 두차례, 96년
다섯차례에 걸쳐 홍콩 스위스 일본 미국 등지를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김원길 의원은 이와관련, "김씨측근인 박태중씨가 93년부터 96년말까지
홍콩을 네차례 드나들면서 자금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믿을만한 제보를 입수해
추적중"이라고 밝혔다.

김의원은 박씨가 <>93년 7월15~18일 <>95년 7월20~22일 <>96년 6월16~19일
<>96년 8월24~26일 사이에 홍콩을 다녀온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임채정 의원도 "박씨 등이 개입한 한보 열연설비 도입 계약과정에서 이중
계약서를 통해 현지에서 바로 비자금을 조성해 은닉했을 가능성이 짙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측은 한보와 독일SMS사 등과의 열연설비 계약과정과 관련한 금융
기관 철강업체 관계자들의 제보를 확보해 놓고 있으며 현재 구체적 물증수집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국당은 김씨측의 폭로전 모의건과 비자금 해외도피 의혹건에 대해 각각
"청문회를 대비한 증언준비 차원" "오래전부터 떠돌던 소문에 불과하다"며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신한국당 관계자들은 그러나 김씨관련 의혹이 수그러들기는 커녕 계속
꼬리를 물고있는데 대해 노골적으로 곤혹스러움과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어떤 황당한 설이 제기돼도 국민들에게 먹혀들고 있는 현 단계
로서는 한보청문회와 검찰재수사를 통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는 도리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인 만큼 김씨가 앞으로 청문회와 검찰재수사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도 사뭇 관심거리다.

김씨는 이와관련, 서울 평창동집에 칩거하며 친한 친구 몇명을 제외하고는
외부와 일체 연락을 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청문회를 통해 자신의 결백성을 입증하고 각종 설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청문회에 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을 뿐이다.

특히 김씨가 청문회에 대비해 거물급 변호사를 이미 선임했다는 설도 들리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김씨가 청문회 등에서 어떻게 증언을 할지 헤아릴 길이 없으나
그가 현 상황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접근하는가에 따라 향후 정국의 조기
안정여부를 점칠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삼규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