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학산업이 오는 27일로 생성 50주년을 맞는다.

LG화학이 50년전 이날 ''동동구리무''용 케이스를 만들기 위해 플라스틱
성형사업에 뛰어든 것이 곧 우리나라 현대 화학산업의 효시였던 것이다.

길지 않은 역사지만 그동안 비약적인 성장가도를 달려온 한국 화학산업.

오늘의 실력과 앞으로의 과제를 2회로 나눠 짚어본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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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에틸렌 3백95만t 생산으로 세계 5위.

작년 유화제품 수출액 54억달러, 무역흑자규모 10억달러.

95년 기준 총생산액(일반화학 포함) 52조로 국내 제조업 생산액의 17%..

국내 화학 산업의 겉모습은 이렇게 화려하다.

좀 튀겨서 얘기하자면 막강한 실력이다.

특히 NCC(나프타분해공장)를 중심으로한 석유화학은 지난 73년 울산
석유화학단지가 가동된지 겨우 20여년만에 미국 일본 러시아 독일과 함께
5대 강국으로 부상했다.

겉모습 뿐만 아니다.

유화제품의 국제가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이젠막강한 영향력도 갖고 있다.

올초 유공 대림산업 삼성종합화학 등 국내 5개사가 4월부터 잇달아
정기보수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요 합성수지 국제가격이 일제히
오름세로 반전될 정도다.

가격영향력 뿐만 아니다.

지난해에는 현대석유화학을 비롯 LG석유화학 유공 한화종합화학 등이
잇달아 제2 NCC설립계획을 내놓자 일본의 일부 업체들은 곧바로 동남아에
공장을 세우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

국내 업체들의 신증설 계획이 국제시장 질서까지 쥐었다 놨다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한국의 석유화학산업은 최소한 아시아지역에서 만큼은
"메이저"라 불릴만 하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메이저로서의 "결격사유"가 적지 않다.

우선 급속 성장에 따른 내실이 문제다.

합성수지 수요가 넘쳐 NCC를 짓고 또 NCC에서 생산되는 에틸렌이 남아
합성수지 공장을 확충하는 식의 점진적인 "정규코스"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발전과정도 문제다.

정확한 장기전망에 바탕한 수출노력이 성과를 거뒀다기 보다는
"어부지리"로 커온 면이 크다.

신증설 이후 적자를 면치 못하던 국내 NCC업체들은 94년부터 본격화된
세계 경기의 회복과 주요 석유화학 공장의 사고로 인한 조업중단 등으로
인해 주요 제품의 국제가격이 급상승하면서 살아날 수 있었다.

발전과정에 나타난 이런 결격사유는 자주 한계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국내 유화업계는 중국시장이 닫히자 연중 휘청거렸다.

국내에 충분한 수요를 갖고 있지 못하는 상태에서 중국 등 대형 수입국에
의존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국내 합성수지의 수출비중은 40% 이상으로 세계 10대 유화국 중 최고다.

일본의 경우도 5%를 밑돌고 대만은 수입이 더 많다.

이런 기형적 구조에다 제품도 저부가가치 제품이다.

우리가 만드는 PVC등 범용합성수지는 비싸야 1t에 1천달러 정도다.

부피만 크고 부가가치는 작은 범용제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는 얘기다.

선진국들이 열을 올리고 있는 정밀화학분야는 더더욱 취약하다.

전국에 석.박사급 이상 화학자들이 1만명에 이르고 있지만 국내에서
독자 개발한 신약은 아직까지 하나도 없다.

생산과 직결되지 않는 일반화학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70년대 초까지만 엘리트들이 몰렸던 화공과는 현재는 공대 중에서
가장 인기없는 학과로 전락해 앞날도 어둡다.

이와관련 석유화학공업협회 박훈 상무는 이런 국내유화산업의 현주소를
"뒤로 물러설 데도 없고 그렇다고 앞으로 나가기도 어려운 위치"라고
표현한다.

LG화학이 최근 성재갑 부회장의 특별 지시로 "정기보수"를 뜻하는 "TA
(turn around)"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사업구조조정에 착수했한것도 바로
이런 현실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봐야할 것 같다.

< 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