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일반회계와 재정융자특별회계를 합친 금액)을 올해보다
"9% 수준 늘린 78조원규모"로 짜겠다는 98년 예산편성지침이 나왔다.

내년 경상성장률을 10%로 전망, 예산규모증가율을 그보다 낮춰 "정부가
긴축을 솔선수범함으로써 사회전반의 근검절약을 유도하겠다"는게
기본방향이라고 재경원은 밝히고 있다.

해마다 경상성장률을 웃도는 예산편성으로 전체 국민경제에서 재정의
비중이 늘어만왔고, 그 때문에 국민에게 허리띠를 조이라면서 정부는
고통을 분담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던 점을 감안할때 내년
예산편성지침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좀더 내용을 뜯어보면 해석은 달라질 수도 있다.

"78조원"은 올해 예산 71조원보다 "9% 수준" 늘어나는 규모이기는
하나, 강경식 부총리가 2조원을 절감하겠다고 밝힌 만큼 올해 실행예산이
69조원에 그칠 것이라고 본다면 내년 예산은 실제로 13%나 증가,
경상성장률을 크게 웃도는 꼴이 된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같은 숫자풀이만으로 내년 예산편성지침이 잘못됐다고
강변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최근들어 예산당국자들이 보이고 있는 재정운영자세는 뭔가
잘못된듯한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나라살림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정직함도, 꼭 해야 할 일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해나가는 꿋꿋함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세입을 2조원 줄이겠다는 발표만해도 그렇다.

세입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세법과 경기에 따라 결정된다.

세수를 2조원 줄여주기위한 세법개정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더라도
세입목표 2조원축소는 경기가 나빠졌기 때문에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세수전망의 수정에 불과하다고 풀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솔선해서 고통을 분담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모두 예상했던 경기급랭을 정부만 내다보지못해 세입을 과다추계했다가
이를 수정한 해프닝에 불과하다고 혹평할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성질의 것을 "고통의 분담"운운하며 생색내려든다면 지탄받아
마땅하다.

SOC(사회간접자본)투자를 당초 계획보다 대폭 축소하려는 것은 또다른
차원에서 문제로 여겨진다.

현재의 물류사정을 감안할때 SOC투자확대는 시급하다.

SOC민자유치사업이 기대에 못미치는 답보상태를 면치못하고 있기
때문에 재정투자확대가 더욱 긴요한 국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는 예산 2조원절감과 관련, 올해 예산에 반영된 SOC투자를
축소할 방침임을 밝힌데 이어 내년 예산지침에서도 SOC에대해 수요억제및
투자효율화방안 강구방침을 분명히 하고있다.

SOC투자재원마련을 위한 교통세인상방침을 밝히면서도 그 투자규모는
축소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해야할 일을 하지않고 예산규모만 줄인다는 것이 반드시
능사일수는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