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의 차기 대권주자들간에 권력구조변경 내지 그 운용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여야 정치권내에 내각제 개헌에
대한 지지세가 점차 늘어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특히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권핵심부가 내각제 개헌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신한국당이 내각제개헌을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는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과 또는 신한국당의 일부 차기주자들이 김총재와 제휴하는
"정계개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추측도 일고 있다.

자민련측은 "한보 및 김현철 사태"가 매듭된뒤 정치권이 내각제에 합의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을 정도다.

이와관련, 자민련의 김총재는 25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내각제 연내 개헌을
위한 시간은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결심할 사람들이 일단 결심만 한다면
시간이 결코 모자라는 것은 아니다"고 말해 주목을 끌고 있다.

간담회에 배석했던 한영수 부총재는 "신한국당과 국민회의 의원 대부분이
내각제를 선호하고 있다"며 "4월 하순께는 내각제가 굳혀질 것"이라고 전망
했다.

권력구조 개편논의는 이와함께 여권내 차기주자들간에 대립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촉매제로 작용, 신한국당이 중심을 잃어가면서 심한 경우
"공중분해" 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인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인사들은 현행 헌법대로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더라도 신한국당
의 상당수 차기주자들이 독자출마하거나 야권과 연대해 "후보조정"을 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권의 차기주자중 현재까지 공공연히 내각제 개헌을 검토해 봐야 한다고
주장한 인사는 이한동고문 밖에 없다.

이홍구고문은 남북관계등을 감안할때 현행 대통령중심제가 당분간 유지돼야
하며 권력운용에 있어서 내각제적 요소를 최대한으로 살려야 한다는
중간자적인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내각책임제 개헌문제가 여권핵심부에서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은 차기주자중 몇사람을 제외하면
여권의 대다수 차기주자 내지 중진들이 평소부터 내각제를 선호해 왔었기
때문이다.

차기주자중 내각제를 확실하게 반대하고 있는 인사는 이회창대표와
박찬종고문 정도다.

이들이 대통령제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대통령
직접선거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보기 때문인듯 하다.

그러나 당내 세가 만만찮은 김윤환고문은 오래전부터 내각제를 선호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고 입원중인 최형우고문도 언제든지 내각제를 수용할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뿐만아니라 신한국당내의 경선과 대통령선거에서 "자신이 없는" 몇몇
인사들의 경우 이에 가세할 가능성이 높아 내각제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엄청난 폭발력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한국당은 이날 이대표 주재로 열린 당직자회의에서 일단 "김영삼총재가
기회 있을때 마다 밝힌 "임기내 개헌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당의
일관된 기본 입장"이라고 확인했다.

당직자회의가 끝난뒤 이윤성대변인은 "권력구조 개편론을 비롯해 민주정당
에서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현재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고 경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개헌이나 지도체제개편 운운은 시기적으로나
절차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관용총장은 기자들과 만나 논의 시기가 적절치 않다면서도
"당론을 바꾸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느냐"며 당의 의사가 한데로 모아질
때는 내각제 개헌도 검토할수 있다는 다소 신축적인 입장을 밝혔다.

특히 그동안 운용면에서 권력 집중의 폐해를 주로 지적해온 이한동고문은
이날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 대부분이 내각책임제나 이원집정부제적 내각
책임제를 실시하고 있다"면서 "현행 헌법구조가 이상적이냐를 고려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권력구조 개편론을 제기했다.

그는 다만 대통령선거가 얼마남지 않아 절차상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의식,
이홍구고문과 비슷한 톤으로 "국무총리의 내각 임명제청권과 국회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등을 적절히 활용하면 현행 헌법의 테두리내에서도
내각제를 실현할수 있다"면서 "긴 안목에서 내각책임제도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치권은 내각제가 계속해서 세를 얻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3당 정립 구도하에서 개헌이 연내에 실현될 것으로 확신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내각제를 연결고리로 하는 정계개편이 일어나거나 신한국당의 일부
차기주자가 자민련등과 손을 잡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국민회의 김대중총재가 최근들어 "15대 국회 임기말 이전의 내각제 개헌"을
애드벌룬으로 띠우고 있는 것은 JP와 여권간에 심상치 않은 "논의"가 진행
되고 있을 것이라는 우려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박정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