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 매료된지도 벌써 기십년이다.

말로는 기도가 어 구하면서도 바둑판을 대할 때마다 양철처럼 달아
오르는 내 마음이 부끄럽기 이를 데 없다.

간혹 한두 판쯤 이겨 탕수육이라도 건질때면 왜 그리 기분이 좋은지.

우선 나의 바둑사전에 "내기"야말로 첫번째 불문율로 손꼽힌다.

바둑을 한이틀쯤 배우고나서부터 하다 못해 자장면 한그릇이라도 내기를
걸어 왔으니 그 버릇은 아마3단인 지금에와서 남주었을까.

내기는 그렇다치고 기자실의 바둑은 왜 그토록 급한지 바둑 한 판을
10여분만에 뚝딱 해치운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더구나 한 판이 두 판되고 세 판으로 늘어나 급기야 기사 놓치고 내기
마저 패할때의 참담함이란....

여하튼 바둑이란 실력대로 두는게 정석이다.

이를 어기고 고집이나 피우고 배짱만을 내민다면 이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는가.

이젠 철좀 들어야겠다.

지금 내가 몸 담고 있는 삼성화재의 바둑모임은 먼저 그 이름부터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바둑발전연구회-약칭 "바발연".

보통 바둑모임이 회원간의 친선을 도모하는 친목단체 성격이 강하다면
삼성화재의 바둑모임은 그러한 기본사고에 플러스 알파가 있다.

박해춘 이사, 임성택 부장, 박덕수 과장, 정경태 대리 등이 열성멤버인
바발연은 바둑팬의 입장에서 바둑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발연의 최대업적은 세계최대의 삼성화재바둑오픈을 창설하는데 크게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전은 바둑을 좋아하는 기업사주의 뜻에 따라 만들어지는데
반해 삼성화재배는 바둑을 사랑하는 바발연 회원들이 바둑대회를 추구하는
최고경영층에서 "이왕 만들거라면 세계에서 가장 큰 대회를 만들자"로
내려와 삼성화재배가 거보를 내디디게 된 것이다.

이번 토요일 오후는 모처럼 바발연 회원들과 봄딸기 5근내기 모임이
약속되어 있다.

자장면 내기가 아닌.......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