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스페인 영화는 "하몽하몽" (감독 바가스 루나)류의 에로틱
코미디, "욕망의 낮과 밤" (감독 페드로 알마도바르) "아만테스" (감독
빈센트 아란다)같은 에로틱서스펜스물로 알려져있다.

따라서 그 인상은 정욕 질투 탐욕 등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것으로 고정됐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신예감독 어거스틴 디아즈 야네스의 "글로리아 두케"는 표면적으로
피 (혈)와 섹스를 남용해 기존공식을 따른듯 하지만 극단적 상황에서도
꺽이지않는 인간의지를 부각시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원제는 "우리가 죽으면 아무도 우리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다"며
글로리아 두케는 여주인공의 이름.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유명 투우사의 아내인 글로리아 (빅토리아 아브릴)는 남편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후 멕시코로 떠난다.

알콜중독에 빠져 창녀가 된 그녀는 우연히 살인사건에 휘말리고
마피아의 추격속에 마드리드로 돌아온 뒤 돈세탁소 명부를 들고 도둑질에
나선다.

끊임없는 사랑으로 그녀를 감싸는 시어머니는 결국 식물인간 아들의
목숨을 끊고 자기도 죽으며 "공부를 계속해 올바른 삶으로 돌아오라"는
말을 남긴다.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스페인판 "니키타"(감독 뤽 베송)로 평한다.

암흑세계속에서 자기를 잃지않는 강인한 여성상을 묘사한 "히로인
무비"라는 것.

야네스 감독이 데뷔작인 이 영화로 스페인 산세바스찬영화제 특별상.
여우주연상과 고야영화제 9부문을 석권했다는 것도 유사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영화엔 뤽 베송에게서 찾을수 없는 계몽주의가 있다.

사회주의 지식인출신의 시어머니는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는 며느리를
버리지 않고 사랑과 격려를 베풀어 희망을 가르친다.

잔혹한 유혈장면은 선입견 때문인지 투우를 연상시키며 스페인 국민배우
빅토리아 아브릴의 연기가 인상깊다.

4월12일 명보극장 개봉.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