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전에 다 왔을때 우여사는 무엇을 어쩌자는 것인가, 너무너무 자기가
한심스럽다.

제인을 어떻게 저 음습한 살롱에서 구해낼 수 있다는 말인가? 돈이
없으면 약을 못하고, 금단현상을 오래 이기면 정상이 될 수도 있다.

그녀는 궁전의 출입구가 보이는 케이크집으로 들어가 오렌지주스를
한잔 시킨다.

초저녁잠이 많은 손녀딸 메어리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갖은
재롱을 다 떨어서 그녀를 즐겁게 해주지만 그 애가 철이 들면 얼마나
우울하고 슬픈 아이로 자랄까,그게 너무 걱정스럽다.

그래서라도 제인은 병원에 다시 들어가야 되고 고쳐서 정상인을
만들어야 된다.

우여사는 여자아이들이 그 큰 구멍과 같은 지하입구로 슬쩍슬쩍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보고,또 중년의 남자 한패와 청년들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흥신소를 사서 저 안의 비리를 당국에 고발하고, 우리
제인을 구하는 것은 결국에 어떤 결과로 치달을까에 대해 또 열심히
궁리를 해본다.

만약에 자기 남편이 공무원만 아니더라도 우여사는 이미 궁전을 상대로
엄청난 전쟁을 벌였을 것 같다.

그러다가 이내 "우미연, 너는 박력이 없어서 안돼"

여직 그녀는 결혼에서부터 대학에서 전공을 정하는 것까지, 이사를 하는
것까지 하나도 자기 의지대로 해본 것이 없다.

오빠가 시키는대로, 남편이 하자는대로, 순종하고 얌전하게 따라만 갔다.

제인의 문제만 해도 그랬다.

약때문에 이성을 잃어버린 그 애를 자기식으로 컨트롤해보지 못했다.

울고 매달려서 애원을 하며 달래고 감동시키는 역할은 했어도 결코
강압적으로 끌고 당겨 강제로 엄하게 리드하지는 못했다.

자율적으로 맡긴다는 것이 약을 하는 아이들에겐 통할 수가 없다.

그녀도 이제는 거의 독이 올라서 자기의 사랑하는 딸을 악의 구렁에서
구해내야 된다고 벼르고 있지만 지금도 "궁전"으로 걸어들어가서 제인을
끌고나오지 못하고 밖에서 동정을 살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매사에 사려깊고 온건한 우여사의 미덕이며 교양이며 한계점이다.

우여사는 건너편 이층의 간판을 힐끗 보다가 말고 갑자기 친구를 만난듯
반갑게 일어섰다.

믿음흥신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막연하게 찾아 헤매던 흥신소를 발견한 것이다.

그녀는 급하게 나가려다 말고 전화번호를 수첩에다 적는다.

도움을 구하자, 우리는 한국의 생활이나 삶의 패턴에 무식하지만 돈을
주면 그들은 내가 원하는 도움을 많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연전에 하나밖에 없는 오빠가 암으로 사망한 것이 무엇보다도
가슴아프다.

외국에 오래 살고 있었지만 친남매의 정은 누구보다도 두터웠고
누이동생의 일이라면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던 오빠가 갑자기 죽었을때
그녀는 친정어머니가 돌아갔을때 보다도 더 통곡하며 울었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오십평 아파트도 오빠가 유언을 하고 죽어서
그녀의 차지가 된 것이고 셋방살이를 면하게끔 배려를 해준 오빠였다.

그래서 올케와 그녀의 사이는 갑자기 아주 나빠졌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