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구조적 문제점과 병폐를 드러낸 국내 금융산업이 이제 금융개혁의
수술대위에서 대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오랫동안 앓아온 중증을 하루 아침에 치유할수는 없겠지만 정부가 적극적인
금융개혁 의지를 보이고 있고, 한보사태 이후 금융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한결 커졌다는 점에서 기본 골격을 새로이 다듬는 한국판 빅뱅이
자못 기대된다.

그러나 93년 금발심(금융발전심의위원회)의 금융제도개편안이나 이웃
일본의 금융제도 개편과정에서는 지방은행에 대한 검토와 배려가 있었던데에
비해 최근 금융개혁위원회의 개혁과제 검토과정에서 지방금융이나 지역금융
기관의 입장을 배려하는 노력이 미흡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60년대말 불모지와 다름없던 지방금융의 열악한 토양 위에 싹을 튀우고
시중은행과 특수은행의 틈바구니 속에서 지역 중소기업 육성과 지역사회와의
밀착된 경영을 통하여 이제 어엿한 지역중추금융기관으로 자리잡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한 축을 떠받치고 있는 지방은행 제도에 대한
검토가 금융개혁 과정에서 반드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요즈음 추진되고 있는 금융개혁의 주안점이 과감한 규제철폐를 통하여
금융기관들간의 공정한 경쟁을 위한 장을 마련하는데 있다면 다같이 은행법
의 적용을 받는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에 대해 더 이상 차별적인 대우를
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방은행이라고 해서 정책적인 우대를 기대해서도 안 될 뿐더러 지방은행을
언제나 은행권의 막내둥이로 취급하여 불리하게 대우해서도 안될 것이다.

자율화 개방화를 계기로 씨티은행, 홍콩상하이은행과 같은 외국은행들이
소매금융시장에 뛰어들고 있는데다 본점을 서울에 둔 전국은행들은 앞다투어
지방점포를 확충하고 있는데도 지방은행은 영업구역 규제와 70%에 달하는
중소기업대출 의무비율 때문에 운신의 폭이 극히 제한된 채 골리앗에 맛선
다윗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이는 지방은행이 애써 발굴 육성한 기업거래처를 전국은행에 빼았기는
불공평을 낳고 있을 뿐더러 지방은행의 성장을 옥죄는 족쇄인 동시에 지방
은행을 이용하는 다수의 지역 기업과 주민들에게도 불이익이 돌아가는 원인
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금융개혁에서는 지방은행은 언제까지나 지역의 울타리에만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영업구역 제한을 과감히 풀어
줌으로써 지방은행 스스로 각자의 특성과 규모에 따라 자율적인 시장위치
전략을 수립하고 펴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할 것이다.

지방은행들이 각자의 영업규모와 시장특성에 따라 일부 중견은행은
"지방에 본점을 둔 일반은행"으로서 대형화 겸업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며, 또 일부 지방은행은 지역을 주된 영업기반으로 삼아 내실위주와
지역밀착화 전략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금융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지방은행이 활력을 지닐 때 지역
경제의 풀뿌리인 중소기업의 건전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고 60~90%에 달하는
수도권 집중도를 완화함으로써 지역간의 균형있는 발전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영업구역과 업무영역에 대한 규제가 풀리고 비록 국제적인 은행으로
발돋움할지라도 지방은행은 어디까지나 본고장에 뿌리를 내린 "고향있는
은행"으로 남아야 한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일본은 50년대에 이미 1현1행주의를 철폐했으며 미국 또한 94년의
리겔.닐법(Riegel & Neal Act) 제정을 통해 은행의 주간업무진출을 허용
하였다.

일본의 지방은행인 요코하마은행은 도시은행 못지않는 행세를 자랑하고
있고, 스미토모, 산와, 도카이등 지방에 본점을 둔 도시은행들은 그 지역
발전에 기여하며 지역사회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

또한 조그마한 지방은행에서 탄탄한 경영성과와 신인도를 바탕으로 인접 주
의 은행을 합병하고 마침내는 5대호에서 멕시코만까지 진출한 Banc One
Corp와 노스캐롤라이나에 거점을 둔 지방은행에서 출발하여 일약 미국내
10위권에 랭크된 Nations Bank 등 대형지방은행(Super Regional Banks)의
발전과정은 자율과 경쟁의 시장원리가 생생히 살아있는 미국 금융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함께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은 가능한 한 재정부문에서 담당토록
함으로써 지방은행의 효율적인 자금운용을 가로막는 중소기업 대출의무비율
(현 70%)을 단기적으로는 시중은행 수준(45%)으로 하향조정하고 중장기적
으로는 이를 철폐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지방은행 서울소재 점포에 대한 예대율 규제도 금융개혁의 본령인
자율과 경쟁을 통한 효율성 제고의 관점에서 철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