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곡에서 금남으로 넘어가는 비포장도로
거기 폐정된 우물 하나 있다
서두르면 냉수에도 체하니, 버드나무 한 그루
늙도록 잎사귀 흔드는 걸 몰랐었다
꽃가루 눈발처럼 흩뿌릴 때
앓아온 눈병 일생을 두고
더 낫지 말아라
누가 불행하다고
가고 있는 봄 한 철에 기대랴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 투성이니 많이 잃고도
하나도 잃지 않은 저기 폐정된 우물
들여다보면 어둑한 물 위로 낙화
물풀처럼 떠돈다

가버리면 봄이었다는 생각이
갈 길 새삼 낯설게 한다

시집 "바닷가의 장례"에서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