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연례 무역장벽보고서에는
한국을 "봉"으로 취급하는 미국의 시각을 다시한번 확인케 하는 내용들로
꽉 차있어 불쾌하기 짝이 없다.

50개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나열한 이 보고서는 무역제재를 가할수도
있는 대표적인 나라들로 한국 일본 중국 유럽연합(EU)을 지목했다.

한국을 지목한 근거는 상품및 서비스 뿐만아니라 투자 정부규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역분야에서 "가장 어려운 시장의 하나"라는 것이다.

동서냉전 종식후 지구상에 유일하게 군림하는 무소불위의 초강대국이
멋대로 휘두르는 "망나니 칼"쯤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이 보고서가
미국 무역제재발동의 기초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그 내용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우선 바셰프스키 USTR 대표에게 묻는다.

미국의 무역적자 원인이 많은 국가들의 시장폐쇄 때문이라는 보고서의
논리가 어째서 한국에까지 적용되는지 말이다.

94년부터 진행돼온 한국의 대미 무역적자는 94년 10억2천6백만달러, 95년
62억7천2백만달러에서 지난해에는 무려 1백16억3천6백만달러에 이르렀다.

우리의 작년 전체무역적자 2백7억달러의 절반이상이 미국에서 발생한
셈이다.

시장이 닫혀있는 데도 이처럼 대미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단 말인가.

USTR 보고서가 특히 강조한 한국자동차시장의 수입장벽만 해도
터무니없는 억지주장에 불과하다.

지난 95년 한-미 자동차협상에서 한국측은 미국이 한국의 조세주권주의를
침해했다는 비판여론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의 자동차세 인하요구를
들어줬다.

그 결과 작년 한햇동안 외제 자동차수입은 2만5천1백48대에 이르러
국내 자동차업계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미국측의 지적대로 지난 1월중 수입차판매가 전년동기대비 11.7%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경기침체 탓이지 외국차에 특별한 불이익을 줬기
때문이 아니다.

1월중 국산승용차 내수판매가 44%나 감소한 것만 봐도 쉽게 알수 있는
일 아닌가.

보고서는 또 우리정부의 과소비억제운동에 시비를 걸고 있다.

이 점은 분명히 우리도 반성해야 할 여지가 많다.

통상마찰의 빌미를 제공하기에 까지 이른 소비자들의 무분별한 과소비도
창피스럽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 수입상품판매를 감시하는 등의 서투른
행동이 노골적인 수입억제정책으로 비쳐졌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조만간 이번 USTR보고서를 앞세워 한국에 집중 포화를 퍼부을
것이 뻔하다.

우리정부로서도 그동안 말로만 되풀이해온 "공세적 통상외교"의
진면목을 보여줄 때가 됐다.

지금은 양국 모두 통상관계에 대한 인식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특히 미국은 한국을 자국상품의 소비시장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진정한 경제협력의 동반자적 관점에서 통상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