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영수회담은 1차적으로는 한보사태와 김현철씨
비리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검찰수사및 국회 국정조사특위 활동에 따른 정치.
사회적 혼란을 극소화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분위기를 더욱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날 회담에서 김영삼 대통령이나 국민회의 김대중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구체적으로 한보특위의 증인축소나 청문회 일정의 단축 등에 합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야정치권은 청와대 영수회담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이같은 방안을
심도있게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이상 국력을 소모하고 국가적 위기를 부채질하는 정쟁 성격의 대치상태를
종결짓자는데 여야영수들이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볼수 있다.

사실 이날 회담에 앞서 신한국당의 박관용 국민회의 한광옥 자민련 김용환
사무총장은 최근 비공개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회동에서 김현철씨 문제가 확정적인 물증없이 계속 증폭되거나
한보청문회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의혹만을 확대 재생산 할 경우 국가적
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데 의견을 함께한 것으로 전해졌다.

3당 총장들은 "사실"에 바탕을 둔 엄정한 사법처리는 해나가되 경제적 위기
국면에서 정치권이 오히려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여야간의 공감대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구체화될지는 아직 좀더 두고
볼 일이다.

이번 회담에서는 또 여권내에서는 물론 여야 정치권과 국민들의 관심사인
내각제 책임제로의 개헌문제에 대해 각자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는데도 의미를
찾아볼수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 내각제 논의가 본격화될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볼수 있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연내 개헌은 사실상 물건너갔다고 얘기할 수도 있게
됐다.

이날 회담에서 김종필 총재는 연내 내각제 개헌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
했다.

김대통령은 그러나 평소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피력해왔다는 점을 상기
시키며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가 얘기하도록 했다.

이대표는 기존의 당론대로 내각제 불가입장을 밝혔다.

김종필 총재를 야권연대에 잡아두기 위해 "마지못해" 다소 전향적인 발언을
해온 김대중 총재는 이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와관련,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대통령이 "임기중 개헌은 결코 없다"는
입장에서 한발 물러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합의문에 내각제 개헌문제가 논의됐다고 밝히면서 앞으로의 논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도 이같은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대통령으로서는 당내의 대세인 대통령제를 포기할 경우 엄청난 내부반발
을 사게 될 것이 명약관화한데다 경우에 따라서는 당이 내각제 개헌론자와
대통령제 호헌론자로 양분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의식했을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다만 물러날 대통령으로서 권력구조 개편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정치권의 논의를 지켜보겠다는 메시지가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여야 협력을 도모해야 하는 시점에서 김대통령이
김종필 총재의 내각제 주장을 면전에서 직접 거부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판단, 이대표로 하여금 반대토록 한 것으로 해석하는 쪽이 다소
우세한 것같다.

어쨌든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김대통령이 이날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는 점을 중시, 내각제 개헌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여야 중진들과의
접촉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총재는 이날 당사로 돌아와 김대통령은 내각제 개헌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한국당측의 브리핑과는 상당한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어쨋든 여권의 차기주자들중 현행 대통령제를 고수하되 헌법에 반영된
내각제적 정신을 유연성있게 활용하자고 주장해온 이홍구 이한동 고문 등이
차선책으로 김종필 총재와 내각제를 연결고리로 제휴할 것인지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총재의 경우 이날 회동에서 돈안드는 선거와 대통령선거의 공정관리
를 건의, 사실상 김대통령이 공감을 산 부분에 상당한 비중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날의 영수회담이 열리게 된 정치적 "배경"은 누가 뭐래도 "3김"의 공동
몰락을 막아야 한다는데 이견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볼수 있다.

국가적 위기를 방치할 경우 국민들은 이미 등을 돌리고 있는 김대통령 뿐만
아니라 야당의 두 김총재에 대해서도 거의 비슷한 강도로 이반 현상을 보일
것이라는 것은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통령은 경제회생을 비롯한 국가적 위기 극복쪽에 무게를
뒀고, 김대중 총재는 야권단일후보로 집권할수 있는 기회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번 회담을 주도했다고 볼수 있다.

김종필 총재는 정국안정에 협조하는 대신 내각제 개헌 성사기회로 삼는다는
전략하에 이번 영수회담에 임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번 영수회담으로 여야 정치권은 경제회복을 위해 당리당략적 정쟁을 접어
두겠지만 연말 대통령선거를 향한 행보는 더욱 가속화 할 것으로 전망된다.

< 박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