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흙에 살리라.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70년대 유행했던 대중가요의 한구절이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버려 황폐해져가는 농촌을 안타까워한 노래였다.

경제개발로 시들해져버린 농촌.

TV화면에나 이따금씩 등장하는 마음속의 고향이 돼버렸던 시골.

그곳에 다시 젊은이들이 몰리고 있다.

일류대를 나온 엘리트신세대들이 논에서 밭에서 냄새나는 축사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고향도 지키고 돈도 벌자"는 신세대들의 신귀거래사로 농촌이 생기를
되찾고 있는 것이다.

조영훈씨(32).

그는 경기도 이천 대월면 송자리에서 축산농장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는 서울토박이로 연세대 체육학과를 졸업했다.

졸업후 건축업도 해보고 식당을 경영하기도 했다.

그럭저럭 먹고 살만 했다.

그러나 자유롭지가 못했다.

그래서 떠올린게 농촌.

"땅은 흘린 땀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격언이 생각났다.

"왜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마음이 끌리더군요"

그는 다시 고대 축산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리고는 농촌에 터를 잡았다.

"공기가 깨끗한 것에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바로 사람답게 사는
것 아닌가요"

한우를 키우며 연간 5천여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그는 이젠 도시생활에
미련이 없다.

김영필(32)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전북 고창군 대산면 덕천리의 비닐하우스에서 채소와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서울에서 6년간 자영업을 하기도 했다.

서울로 가지않으면 "팔푼이"라는 소리를 듣던 시골이었지만 요즘은 내려
오는 친구들이 더 많다.

"틀에 박힌 도시생활이 따분해지더군요.

역시 흙을 만지는게 더 마음이 편해요"

이같은 젊은이들의 귀농현상은 갑자기 닥친 일이 아니다.

도시와 농촌간 생활수준 격차가 크게 줄어든데다 기계식 영농으로 농사
일도 한결 쉬워졌기 때문.

명예퇴직이나 취업전쟁으로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진 것도 이런 현상에
한몫 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농촌으로 내려오는 40대 중반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하지만 이들이 치열한 도시생활속의 경쟁에 밀려 농촌으로 단순히 "떠밀려
온" 것만은 아니다.

도시와 농촌생활을 저울질해보고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농촌에서 미래를 엿보고 인생을 투자했다고 할 수 있다.

농림부에 따르면 90년부터 95년까지 새로 농사를 짓는 가구가 20만3천
가구나 늘었다.

이중 41.4%인 8만4천여가구가 40대이하의 젊은이들이다.

젊은이들의 귀농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경영마인드를 갖춘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농산물 개방이라는 외부조건에 맞서 우리 농촌을 기업형으로 개발할
인재들 말이죠"(농림부 정현출 사무관)

하지만 농삿일이라는게 예나 지금이나 손쉬운 일은 아니다.

고소득자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연고가 없이 무작정 도시를 떠난 젊은이들은 아직 기반을 잡지 못하고
고전하기도 한다.

농삿일이라는게 일단 땅이 있어야 하는 만큼 정착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어머니 젖가슴같은" 대지를 사랑하고 땀흘리면서 느끼는 보람에
농촌에서 산다.

빡빡한 도시생활보다는 전원의 여유로움과 그속에서 인간의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귀거래사로 "돌아가자. 전원이 장차 황폐하려하니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라고 했던 중국 송나라 문인 도연명.

자연과 함께 살겠다고 신세대들의 "신"귀거래사가 농촌에 희망의 씨앗이
되고 있는 것이다.

< 김준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