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집을 비롯한 중소규모 음식점이 부쩍 늘고 있다.

시내나 변두리 할 것 없이 요즘 밥장사가 대유행이다.

"음식점 창업 증후군"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작년 하반기부터.

이때는 명예퇴직이라는 말이 귀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명퇴" 바람으로 실직자들이 대거 생겨났고 이들이 도처에 음식점을
차렸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실직자들은 왜 밥장사를 선호하는가.

"별다른 기술이 필요없어서" (신촌 N김밥집 박철웅사장)다.

박사장은 작년말 17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명예퇴직했다.

영업관리부장에 오르기까지 쌓은 경력을 앞세워 그는 재취업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신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는 말만 들었다.

"발로 뛰는 게 최고"라는 말만 믿고 일해온 그는 빠른 속도로 변하는
시장환경에 대응할 능력을 키우지 못했다.

결국 장사외에는 할 게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박사장처럼 한국의 실업자들은 여느 선진국의 실업자와는 다른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첫째는 물론 일자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통사항.

그러나 한번 직장을 잃으면 다른 일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는 건
외국과 구별되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의 실업자들만이 갖고 있는 가슴앓이다.

한국 실업자가 "이중고"에 시달리는 이유로 먼저 마땅한 직업능력 교육이
없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처음 들어와 배운 기술을 몇년이고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동부 박용웅 능력개발과장).

10년 일한 사람이나 1년 일한 사람이나 기술수준이 엇비슷하다는 말이다.

한국에선 내로라 하는 전자업체인 A사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5만여명의 종업원들에게 직업능력 향상교육을 시키는 사내강사는 21명에
불과하다.

자체 교육프로그램이나 교육평가시스템은 아예 있지도 않다.

이같은 교육부재는 기업의 경쟁력은 물론 근로자의 상품가치를 떨어
뜨리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아이보리상표로 유명한 미국 P&G사의 경우 영업력에 관한한 미국 최고로
꼽힌다.

이 회사는 신입사원에게 자체개발한 마케팅기법을 철저히 교육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래서 이 회사에서 퇴직한 사람은 언제나 스카우트대상이 된다.

P&G에서는 쫓겨나도 여기서 익힌 직무능력때문에 다른 회사에서는
그야말로 "귀하신 몸"으로 대우받는다.

밥장사밖에 할 것이 없는 한국의 실업자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근로자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적 손실로 되돌아
오게 마련이다.

이는 작년 12월부터 올 3월까지 실업자 10명중 8명이 다시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는 통계 (노동부)가 반증한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실업을 한 사람중 4개월 이내에 일터로
돌아간 사람은 17.4%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의 경우는 반대다.

미국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빠져있던 지난 88년부터 90년 사이에
20인이상 기업체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1백35만명이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동안 20인 이하 사업장에 취업한 사람만 4백만명이나
된다.

실업을 했던 사람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취직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산업인력 관리공단 김재석이사장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의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보석도 갈지 않으면 단순한 돌일 뿐이다. 자원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우리가 소중한 인적자원을 개발하지 않고 버리는 잘못을
되풀이하는 한 언제나 2등국가에 머물수 밖에 없다"

김이사장의 지적은 기업 정부 근로자 모두가 곱씹어봐야 할 대목임에
틀림없다.

< 윤기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