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사태의 주역인 정태수 한보 총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한 7일 한보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서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결정적인 사실들은 발견해
내지 못했다.

그러나 정.관계에 대한 로비의 일단을 볼수 있는 몇가지 사실들이 새롭게
제기됐다.

먼저 정총회장은 "정태수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의원들에게 돈을 주었느냐는
특위 위원들의 거듭된 추궁에 "예"라고 답해 정계및 관계를 대상으로 자금을
동원, 로비를 해왔음을 시인했다.

정총회장은 자민련 김용환 사무총장에 대해 "옛날부터 잘 안다"며 친분관계
를 확인한뒤 "내가 (직접) 안했다"는 말로 정치자금 지원을 시인했다.

그러나 김총장은 이날 "정태수씨를 알지 못하며 자금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
고 부인했다.

정총회장은 또 국민회의 김상현, 신한국당 김덕룡 의원에 대한 자금지원에
대해서도 "기억에 나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직접) 안했기 때문"이라는 교묘한 논리로 자금지원을 일부 시인했다.

또 지난 95년 당시 자민련 소속의 정태영 전 의원이 한보철강의 공유수면
매립과 관련 자료를 요청했을때 김종필 총재가 이를 무마하지 않았느냐는
이신범 의원의 질의에 대해 정회장은 "이용남 사장에게 1천만원을 주어
처리하라고 지시했다"며 부하직원을 동원, 로비를 한 사실을 인정했다.

정총회장은 또 이석채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도 96년 12월과 1월, 2차례
만나 한보 부도와 관련된 얘기를 나눴다고 진술했다.

그동안 이 전수석은 "96년 12월 정씨가 청와대로 찾아와 대출을 부탁해
은행에 가서 상의하라며 돌려보냈다"고 진술한 바 있다.

따라서 이 전수석이 지난 1월 정총회장을 만난 사실을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총회장은 또 임창열 당시 재경원 차관을 만나 "기업의 부도를 내는 것은
생이빨을 빼는 것과 같아 부작용이 따른다"며 "당신 윗사람에게 얘기해
선처토록 해달라"고 요구한 사실도 밝혀졌다.

정총회장은 또 김영삼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지난 88년 올림픽 당시 여자
하키 결승전이 열린 성남 공설운동장에서 처음 만나, 3당 합당후 당대표와
당재정위원으로 친숙하게 지냈다"며 "그러나 재정위원으로서 규정에 따른
자금지원 외에는 개인적으로 돈을 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총회장은 또 김종국 전 한보재정본부장 등 부하직원들의 비자금과 관련한
진술에 대해 "모든 돈을 내가 직접 관리했다"며 "주인이 알지 머슴이 어찌
아냐"고 일축하기도 했다.

< 김태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