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 LG정유 이사 >

베스트셀러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으로 서점에 갈 때마다 지나쳤던 책인데
직장 동료가 선물로 주어 읽게 되었다.

그동안 주로 직장생활에 도움이 될 경영 서적 위주의 독서 습관을 갖고
있던 나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의 첫 이야기를 읽고 난 후 잠시
책을 덮었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그동안 차량이 북적대는 큰 길이나 화려한 조명이 있는 변화가만이
길인줄 알고 살아 왔다.

숲과 시내가 있고 소박한 사람의 정이 배어 있는 아름다운 길이 있음을
잊고 지낸 지 오래였기 때문이리라 이 책은 가정, 학교, 직장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삶의 지혜, 진정한 용기를 주제로 한 실화를 짧은 이야기 형식으로
엮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단순에 읽는 것보다 곰곰히 씹어 읽으라고 권유했으나
이야기마다 이어지는 감동에 빠져 하루만에 두 권을 다 읽고 말았다.

이 책은 내가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던 인간 본연의 세계를 일깨워 주었다.

또한 아름다운 이야기에 공감하고 감동하는 것을 보니 나도 착한 근본을
갖기는 하였구나 하는 자각을 하게 해 주었다.

그후 며칠동안 나는 심한 갈등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서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끝없이 유혹의
길로 이끄는 또다른 심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나절 동안 온통 나의 가슴을 흔들었던 그 감동을 바탕으로 나도 사랑과
용기와 지혜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으나 당장 그 다음날
출근길에서부터 또다시 나쁜 심성이 나도 몰래 발동하고 말았다.

신호가 바뀐 횡단보도를 느릿느릿 건너는 할머니가 짜증스러웠고 차선에
서툴게 끼어드는 초보운전 차량에 화가 났다.

문득 나 뿐만 아니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나오는 사람들처럼
용기를 가지고 사랑을 베풀며 지혜롭게 사는 인간의 참더운 본성을 잊고
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있으며 읽고 난 후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있다.

필경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요즘에는 그 누구보다도 신문의 정치, 사회 면을 비좁게 만드는
주인공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그들도 본래는 남을 시가하고 모함하는 심성을 갖고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며 부와 권세와 명예에 집착하여 양심을 헌신짝처럼 팽개친 채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하는 부도덕함을 배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랑할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그리고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용기와
지혜가 너무 오랫동안 닫혀진 마음속에 숨어있을 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