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정국이 차기 대권구도에도 심상치 않은 여파를 던지고 있다.

한보수사의 여파가 크긴 하겠지만 여권의 일부 차기주자가 정치적 타격을
입고 낙마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게 한때의 지배적 관측이었다.

하지만 정태수 리스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 진행되면서 그 파장은
여야 정치권 전체로 번지고 있다.

우선 전반적인 분위기는 김영삼 대통령을 비롯한 3김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
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이 차기대권 구도에서 미칠 영향력이 상당히 줄어드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다.

구 정치인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뭉치는 소위 합종연횡도 대의원들에게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만큼 구시대 정치인을 축으로 하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변화의 욕구가
크게 일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또 신한국당내 최대 계파로 여권의 차기후보 경선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던 민주계의 중진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됐거나 소환될
처지에 놓인 것도 큰 변수가 되고 있다.

민주계는 독자후보를 내지 못하고 차기정권에서의 제휴세력을 찾게 될
것이라는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킹 메이커"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던 민정계의 김윤환
고문이 정치적 상처를 입은 것도 여권의 경선구도에 다소 영향을 미칠 것
이라는 지적이다.

여권의 경선구도는 이제 영입파를 중심으로 전보다 훨씬 단순화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민주계가 자체후보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됨으로써 그만큼 경선
구도에 불가측성을 증대시키는 요인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제 여권의 대권구도는 일단 이회창 대표와 박찬종 이홍구 이한동 이수성
고문, 이인제 경기지사 등 6명으로 압축되고 있다.

입원중인 최형우 고문은 말할 것도 없고 김덕룡 의원, 김윤환 고문은 이번
"한보터널"을 지나면서 사실상 대권반열에서 멀어진게 아니냐는 분석이
우세하다.

특히 도덕성과 청렴을 상징처럼 내세웠던 김덕룡 의원은 검찰의 소환조사
과정에서 정치적인 치명상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김윤환 고문의 정치적 위상도 타격을 받게 됐다.

이번 검찰 출두는 자신의 출마의지를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계기가 됐을
뿐만 아니라 "킹 메이커"로서의 영향력이 많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수 있다.

김고문의 검찰출두는 또 "이회창 대 반이회창" 구도에서 그와 정치적 연대를
모색해온 이대표에게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대중적 지지도라는 측면에서 이대표와 라이벌 관계에 있던 박찬종 고문도
결코 손해본게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원외라는 점 때문에 한보 회오리에 휩쓸리지 않아 참신한 대국민 이미지를
손상받지 않은데다 이대표의 입지약화로 반사이익까지 얻었다는게 박고문측
분석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여권 일각에서는 대권구도가 사실상 3자 대결구도로
정리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회창 대표와 박찬종 이수성 고문 등 이른바 영입파 "빅3"간의 대결구도
라는 것이다.

이대표의 경우 비록 김윤환 고문을 비롯, 비서실장인 하순봉 의원, 박희부
전 의원 등 측근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돼 상당한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여전히 당대표라는 프리미엄과 대중적 지지도 등을 토대로 유력한 대권주자로
남아 있는게 사실이다.

이대표가 최근들어 김대통령과 긴급 면담, 민주계의 동요를 차단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민주계 대다수의 정서는 이홍구 이수성 박찬종 고문 등
세사람에게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홍구 고문은 노동법 파문으로 워낙 큰 타격을 입어 대선게임에서 승산을
낙관할수 없다는게 민주계의 고민이 되고 있다.

결국 민주계는 이수성 박찬종 고문 중 한사람을 택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점점 세를 얻어가고 있다.

큰 변수가 없으면 이수성 박찬종 고문중 누가 민주계의 마음을 끌어안느냐에
따라 이회창 대표와 일전을 벌이는 양자 대결구도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해 지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그러나 아직 정치적 변수가 많아 이한동 고문과 이인제 경기지사
도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구시대 정치인에 대한 혐오감의 확산으로 국민회의 김대중 자민련 김종필
총재를 축으로 하는 야권의 후보단일화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도 한보정국
이전 보다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들이 추진해온 내각제개헌은 물론 야권후보 단일화가 물건너 갈 것으로
보는 인사들이 늘어나는 것은 이같은 분석에 따른 것이다.

일부에서는 그러나 양김이 각각 출마한후 선거기간중 상호연대 또는 후보
사퇴형식으로 사실상의 후보단일화를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박정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