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부도가 마치 레이스를 벌이는듯 하다.

한보청문회가 진행되는 한편에선 대한민국의 유서 깊은 회사들이 거론되는
또 하나의 시한폭탄이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에도 3조가 넘는다"는 것이고 보면 한보에 버금가는 폭탄이 될 것도
분명해 보인다.

15일엔 은행장들이 긴급히 모임을 가지고 종금사의 사장님들이 따로 모여
무언가의 대책을 검토했지만 마땅한 대책이 있을리 만무하다.

이날 모임은 정부가 시킨 일이긴 하지만 금융권 내부에서도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하는 질문은 전부터도 있어 왔었다.

모두가 필요성은 절감하고 있지만 자신만큼은 수렁에서 먼저 빠져나오고
싶은게 금융인들의 요즈음 심정이다.

그러나 기업들의 책임도 없지 않다.

일본에서 성장경제의 거품이 빠지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 기업들은
강건너 불구경하듯 해온게 사실이었다.

사정이 다급해진 다음에야 자구계획을 내놓은들 그때는 이미 뱃고동소리가
울리고난 다음일 경우가 허다했다.

배가 기운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만 정작 기업 내부에서조차 이사실이
엄정히 보고되고 있지 않은 것같다.

50년이 넘게 버텨온 기업을 부도내는 일은 옳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부도를 내는 금융 기관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기업의 잘못이 크다.

거품을 빼야 한다는 것은 이미 6년이나 전인 90년대초부터 분명한 것이었다.

차입경영의 덧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아직 배워야 할 교훈이
더 남아 있다는 말도 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