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이래 최대의 역사로 불리는 경부고속철도가 시험선구간부터 좌초의
위기를 맞이했다.

20억원의 거액을 들여 외국 회사에 안전진단을 의뢰한 결과는 우리의
건설역량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만을 안겨줬다.

일부 콘크리트 구조물에 음식물찌꺼기와 신문지가 섞여 있는가 하면 물과
시멘트의 배합비율조차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철근 배열 간격이 일정치 않는 곳은 부지기수였고 가장 중요한 기초공사
부분에서도 논흙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채 교각을 세운 곳도 2군데나
발견됐다.

한마디로 시공의 ABC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21세기 국토의 대동맥 역할을 할 경부고속철도는 이렇듯 시험선구간에서부터
대충대충 시공되고 있었다.

경부고속철도 시험선구간의 시행착오는 정치논리에 떠밀린 졸속행정과
주먹구구식 사업계획, 대충 넘어가는 시공관행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경부고속철도는 지난 90년 6월 노선확정 발표후 불과 2년후인 92년 6월
30일 시험선구간(천안-대전) 4개 공구를 시작으로 본격 착공에 들어갔다.

건설계획이 발표된 89년부터는 3년이 걸린 셈이다.

프랑스의 TGV나 일본의 신칸센(신간선)이 최소 7-10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공사에 들어간 것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기간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차종선정과 그에 따른 설계도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에 들어가는 것은 무모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이 주장은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권에 의해 묵살됐다.

이에따라 정부는 타당성 조사만을 끝낸채 시공업체를 선정, 우선 땅을 파는
일부터 시작했다.

설계도는 표준설계도로 대체하는 편법을 동원했고 가장 중요한 기술조사는
착공후에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시공업체들은 고속철도 건설에 대한 기술적 준비없이 표준
설계도 한장만을 받아들고 현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시공업체들은 설계부실로 인해 대부분의 구간에서 설계없이 시공하거나
설계를 변경해가며 공사를 진행했다.

특히 교량 터널의 경우 설계는 없고 시공만 있는 기현상이 속출했다.

이 때문에 시험선구간에서만 38회에 걸쳐 설계변경이 잇따랐고 이에따른
예산손실도 무려 2천3백40억원에 이르렀다.

또 지반및 기초조사 미흡으로 지난해에야 상리터널과 조남1터널에서 폐갱도
발견, 노선을 변경하는 사태까지 불러 왔다.

사업계획 수립 역시 주먹구구식으로 일관했다.

당초 91년 8월로 돼있던 착공시기가 92년으로 연기되는가 하면 총사업비
두차례나 수정됐다.

지난 90년 최초 사업계획 수립당시 5조8천4백62억원이었던 사업비가 93년
에는 10조7천4백억원으로, 지난해에는 15조원가량으로 상향조정됐다.

최초 사업비 산정때는 노반공사비 산출기준으로 일반철도인 전라선과
안산선 건설비의 1백40-1백50%로 어림잡았다.

궤도 건설비는 일반철도의 장대레일 부설단가를 기준으로 산출하는등 기본
조차 갖추지 못했다.

이와함께 사업계획 발표시 포함되지 않았던 서울역 건설계획이 94년 10월에
추가됐고 교량형식도 PC박스에서 PC빔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PC박스로 변경
됐다.

시공업체들의 대충대충식 시공관행은 이번 미국 WJE사의 안전진단 결과에서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인공위성 발사대를 만드는 것과 같은 고도의 시공능력이 요구되는 고속철도
시공현장에서 부분적이긴 하지만 부실시공이 있었다는 사실은 불안감을
넘어 충격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시공업체들은 "처음 해보는 공정이라 미비한 점이 있었던게 사실"이라고
변명하지만 건설시공기술의 기초인 콘크리트 품질에 하자가 있었다는 점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고난도 시공기술에 대한 준비소홀도 문제지만 가장 기초적인 것조차 지키지
않는 시공관행이 위험수위에 와 있다는 지적이다.

< 김상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