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5.18' 확정판결] 대법원 판결문 요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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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이른바 5.18 내란등 사건부분
1, 피고인 황영시, 차규헌,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이희성, 주영복,
정호용(이하 1.항에서는 "피고인들"이라고 한다)의 변호인들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국헌문란의 목적
(1)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설치가 국헌문란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형법 제91조 제2호에 의하면,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국헌문란의
목적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다"고
하는 것은 그 기관을 제도적으로 영구히 폐지하는 경우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사실상 상당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포함한다고
해석하여야 한다고 전제하고는,
그 내세운 증거에 의하여, 피고인들이 이른바 12.12군사반란으로 군의
지휘권과 국가의 정보기관을 실질적으로 완전히 장악한 뒤, 정권을 탈취하기
위하여 1980년5월 초순께부터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비상대책기구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시국수습방안"등을 마련하고,
그 계획에 따라 같은 달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전군지휘관회의에서 결의된 군부의 의견인 것을 내세워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하도록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강압하고 병기를 휴대한 병력으로
국무회의장을 포위하고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여 국무위원들을 강압 외포
시키는 등의 폭력적 불법수단을 동원하여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의결.선포
하게 함으로써,
국방부장관의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배제
하였으며, 그 결과로 비상계엄 하에서 국가행정을 조정하는 일과 같은
중요국정에 관한 국무총리의 통할권 그리고 국무회의의 심의권을 배제시킨
사실,
같은 달 27일 그 당시 시행되고 있던 계엄법(1981년4월17일 법률 제3442호
로 전문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9조, 제11조, 제12조 및 정부조직법
(1981년4월8일 법률 제342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5조에 근거하여 국가
보위비상대책위원회 및 그 산하의 상임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상임위원장에
피고인 전두환이 취임하여 공직자 숙정, 언론인 해직, 언론 통폐합 등
중요한 국정시책을 결정하고 이를 대통령과 내각에 통보하여 시행하도록
함으로써,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회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 각 부를 통제
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하여 헌법기관인 행정 각 부와 대통령을 무력화시킨
사실등을 인정한 다음,
피고인들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게 하여 비상계엄 하에서 국가행정
을 조정하는 일과 같은 중요국정에 관한 국무총리 통할권과 이에 대한
국무회의의 심의권을 배제시킨 것은 헌법기관인 국무총리와 국무회의의
권능행사를 강압에 의하여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므로 국헌문란에 해당
하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여 헌법기관인 행정 각 부와 대통령을
무력화시킨 것은 행정에 관한 대통령과 국무회의의 권능행사를 강압에
의하여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므로 역시 군헌문란에 해당한다고 판단
하였는바,
구계엄법과 구정부조직법 등 관계법령의 각 규정과 기록에 비추어 볼 때,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하다.
(2) 시위진압행위가 국헌문란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등의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형법 제91조가 국헌문란을 정의하면서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제1호)과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제2호)등 두 가지를 들고 있는 것은 국헌문란의
대표적인 행태를 예시하여 그 해석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
하여야 할 것인데,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주권자의 입장에 서서 헌법을 제정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가장 중요한 소임을 갖는 것이므로, 이러한 국민이 개인으로서의
지위를 넘어 집단이나 집단 유사의 결집을 이루어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일정한 시점에서 담당할 경우에는 이러한 국민의 결집을 적어도 그 기간중
에는 헌법기관에 준하여 보호하여야 할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국민의 결집을 강압으로 분쇄한 행위는 헌법기관을 강압으로
분쇄한 것과 마찬가지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고 전제한 다음,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들의 국헌문란행위에 항의하는 광주시민들은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수호를 위하여 결집을 이룬것이라고 할 것이므로 광주시민들의 시위를
피고인들이 병력을 동원하여 난폭하게 제지한 것은 강압에 의하여 그 권한
행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어서 국헌문란에 해당하며,
그렇지 아니하다고 하더라도 원래 국헌문란의 죄에 있어서 강압의 대상과
폭동의 대상은 분리될 수 있는바, 피고인들이 국헌문란행위를 항의하는
광주시민의 시위를 난폭하게 제압함으로써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무위원들
을 강압, 외포하게 하는 효과를 충분히 거두었으므로, 이러한 측면에서도
피고인들의 시위진압행위는 국헌문란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생각건대, 헌법상 아무런 명문의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헌법의
수호자로서의 지위를 가진다는 것만으로 헌법수호를 목적으로 집단을 이룬
시위국민들을 가리켜 형법 제91조제2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할것이다.
그리고 원심이 형법 제91조가 국헌문란의 대표적인 행태를 예시하고 있다고
본 것도 수긍하기 어렵다 할것이다.
따라서, 위 법률 조항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헌법수호를 위하여 시위하는
국민의 결집을 헌법기관으로 본 원심의 조처는 결국 유추해석에 해당하여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어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원심이 적법하게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인들이 1980년5월17일
24시를 기하여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헌법기관인 대통령,
국무위원들에 대하여 강압을 가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에 항의하기 위하여
일어난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내란행위가 아니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난폭하게
진압함으로써,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에 대하여 보다 강한 위협을 가하여 그들을 외포하게
하였다면, 이 사건 시위진압행위는 피고인들이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강압하여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국헌문란에 해당하고, 이는 피고인들이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직접적인 수단이었다고 할 것이다.
같은 취지의 원심의 사실인정및 가정적인 판단은 정당하므로, 결국 앞서
본 원심의 잘못은 판결에 영향이 없다고 할 것이다.
(3) 국헌문란의 목적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피고인들이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외부적
으로 드러난 피고인들의 행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우및 그 행위의 결과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전제하고는, 피고인들이 이른바 12.12
군사반란을 통하여 군의 지휘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함과 아울러 국가의 정보
기관을 완전히 장악한뒤,
1980년5월 초순께부터 이른바 "시국수습방안" "국기문란자 수사계획"
"권력형 부정축재자 수사계획"을 마련하여 이를 검토, 추진하기로 모의하고,
그 계획에 따라 1981년1월24일 비상계엄의 해제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예비
검속,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국회의사당 점거.폐쇄, 보안목표에 대한
계엄군 배치, 광주시위진압,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설치.운영,정치활동
규제등 일련의 행위를 강압에 의하여 행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피고인들이 행한 위와 같은 일련의 행위는 결국 강압에 의하여 헌법기관인
대통령 국무회의 국회의원등의 권한을 침해하거나 배제함으로써 그 권능
행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므로 국헌문란에 해당하며, 위 일련의
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 그 경위및 결과등을 종합하여 볼때, 피고인들이
1980년5월17일을 전후한 이 사건 범행 당시에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는바,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및 판단은 정당하다.
나, 폭동성
(1) 비상계엄 전국확대의 폭동성
(가)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에 폭동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형법 제87조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폭행 또는 협박은 일체의
유형력의 행사나 외포심을 생기게 하는 해악의 고지를 의미하는 최광의의
폭행.협박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를 준비하거나 보조하는 행위를 전체적으로
파악한 개념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1980년5월17일 당시 시행되고 있던 계엄법 등 관계법령에 의하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는 필연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게 되므로
(제11조, 제12조, 제13조),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국민에게 기본권이 제약될 수 있다는 위협을 주는 측면이 있고, 민간인인
국방부장관은 지역계엄실시와 관련하여 계엄사령관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지휘감독권을 잃게 되므로(제9조),
군부를 대표하는 계엄사령관의 권한이 더욱 강화됨은 물론 국방부장관이
계엄업무로부터 배제됨으로 말미암아 계엄업무와 일반국정을 조정 통할하는
국무총리의 권한과 이에 대한 국무회의의 심의권마저도 배제됨으로써,
헌법기관인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받는 강압의 효과와 그에 부수하여
다른 국가기관의 구성원이 받는 강압의 정도가 증대된다고 할 것이며,
따라서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의 그와 같은 강압적 효과가 법령과 제도
때문에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법령이나 제도가 가지고
있는 위협적인 효과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진 자에 의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에는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가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협박행위가 되므로 이는 내란죄의
폭동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2) 내란목적 살인에 대한 공동실행의 의사가 없고, 그 실행행위에 가담한
바가 없으며, 살인과 국헌문란의 목적 사이에 직접 관련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그 내세운 증거를 종합하여, 광주재진입작전(이른바 "상무충정작전")
계획은 1980년5월21일께부터 육군본부에서 여러번 논의를 거친후 최종적으로
피고인 이희성이 같은달 25일 오전에 김재명 작전참모부장에게 지시하여
육본작전지침으로 이를 완성하여, 같은 날 12시15분 국방부 내 육군회관에서
피고인 전두환, 황영시, 이희성, 주영복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같은 달 27일
0시1분이후 이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는데,
피고인 황영시는 같은달 25일 오후 김재명 작전참모부장과 함께 광주에
내려가 전투병과교육사령부 사령관 육군소장 소준열에게 이를 직접 전달하는
한편, 위와 같이 광주재진입작전이 논의되던중인 같은해 5월23일12시30분께
김기석 전교사 부사령관에게 무장 헬기및 전차를 동원하여 시위대를 조속히
진압할 것을 지시하였고,
피고인 정호용은 광주에 투입된 공수여단의 모체부대장으로서 공수여단에
대한 행정, 군수지원 등의 지원을 하는 한편, 소준열 전교사령관에게
공수여단의 특성이나 부대훈련상황을 알려 주거나 재진입작전에 필요한
가발, 수류탄과 항공사진 등의 장비를 준비하여 예하부대원을 격려하는 등
광주재진입작전의 성공을 위하여 측면에서 지원하였으며,
위 작전지침에 따라 전교사령관 소준열이 공수여단별로 특공조를 편성하여
전남도청 등 목표지점을 점령하여 20사단에 인계하기로 결정하는 등 구체적
인 작전계획과 작전준비를 하였고, 이에따라 공수여단 특공조가 같은 달
26일23시께부터 침투작전을 실시하여 광주재진입작전을 개시한 이래 같은달
27일6시20분까지 사이에 전남도청, 광주공원, 여자기독교청년회(YWCA) 건물
등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그 특공조 부대원들이 총격을 가하여 이정연 등
18명을 각 사망하게 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광주재진입작전을 실시하여 전남도청 등을 다시 장악하려면 위와 같이
무장을 하고 있는 시위대를 제압하여야 하며, 그 과정에서 이에 저항하는
시위대와의 교전이 불가피하여 필연적으로 사상자가 생기게 되므로,
피고인 전두환및 위 피고인들이 이러한 사정을 알면서 재진입작전의 실시를
강행하기로 하고 이를 명령한 데에는 그와 같은 살상행위를 지시 내지 용인
하는 의사가 있었음이 분명하고,
재진입작전명령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시위대의 무장상태 그리고 그
작전의 목표에 비추어 볼때, 시위대에 대한 사격을 전제하지 아니하고는
수행할수 없는 성질의 것이므로, 그 실시명령에는 그 작전의 범위 내에서는
사람을 살해하여도 좋다는 발포명령이 들어 있었음이 분명하며,
당시 위 피고인들이 처하여 있는 상황은 광주시위를 조속히 제압하여 시위
가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지 아니하면 내란의 목적을 달성할수 없는,
바꾸어 말하면 집권에 성공할수 없는, 중요한 상황이었으므로, 광주재진입
작전을 실시하는 데에 저항 내지 장애가 되는 범위의 사람들을 살상하는
것은 내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직접 필요한 수단이었다고 할 것이어서,
위 피고인들은 피고인 전두환과 공동하여 내란목적살인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하였는바,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8일자).
1, 피고인 황영시, 차규헌,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이희성, 주영복,
정호용(이하 1.항에서는 "피고인들"이라고 한다)의 변호인들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국헌문란의 목적
(1)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설치가 국헌문란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형법 제91조 제2호에 의하면,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국헌문란의
목적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다"고
하는 것은 그 기관을 제도적으로 영구히 폐지하는 경우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사실상 상당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포함한다고
해석하여야 한다고 전제하고는,
그 내세운 증거에 의하여, 피고인들이 이른바 12.12군사반란으로 군의
지휘권과 국가의 정보기관을 실질적으로 완전히 장악한 뒤, 정권을 탈취하기
위하여 1980년5월 초순께부터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비상대책기구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시국수습방안"등을 마련하고,
그 계획에 따라 같은 달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전군지휘관회의에서 결의된 군부의 의견인 것을 내세워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하도록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강압하고 병기를 휴대한 병력으로
국무회의장을 포위하고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여 국무위원들을 강압 외포
시키는 등의 폭력적 불법수단을 동원하여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의결.선포
하게 함으로써,
국방부장관의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배제
하였으며, 그 결과로 비상계엄 하에서 국가행정을 조정하는 일과 같은
중요국정에 관한 국무총리의 통할권 그리고 국무회의의 심의권을 배제시킨
사실,
같은 달 27일 그 당시 시행되고 있던 계엄법(1981년4월17일 법률 제3442호
로 전문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9조, 제11조, 제12조 및 정부조직법
(1981년4월8일 법률 제342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5조에 근거하여 국가
보위비상대책위원회 및 그 산하의 상임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상임위원장에
피고인 전두환이 취임하여 공직자 숙정, 언론인 해직, 언론 통폐합 등
중요한 국정시책을 결정하고 이를 대통령과 내각에 통보하여 시행하도록
함으로써,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회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 각 부를 통제
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하여 헌법기관인 행정 각 부와 대통령을 무력화시킨
사실등을 인정한 다음,
피고인들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게 하여 비상계엄 하에서 국가행정
을 조정하는 일과 같은 중요국정에 관한 국무총리 통할권과 이에 대한
국무회의의 심의권을 배제시킨 것은 헌법기관인 국무총리와 국무회의의
권능행사를 강압에 의하여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므로 국헌문란에 해당
하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여 헌법기관인 행정 각 부와 대통령을
무력화시킨 것은 행정에 관한 대통령과 국무회의의 권능행사를 강압에
의하여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므로 역시 군헌문란에 해당한다고 판단
하였는바,
구계엄법과 구정부조직법 등 관계법령의 각 규정과 기록에 비추어 볼 때,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하다.
(2) 시위진압행위가 국헌문란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등의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형법 제91조가 국헌문란을 정의하면서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제1호)과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제2호)등 두 가지를 들고 있는 것은 국헌문란의
대표적인 행태를 예시하여 그 해석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
하여야 할 것인데,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주권자의 입장에 서서 헌법을 제정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가장 중요한 소임을 갖는 것이므로, 이러한 국민이 개인으로서의
지위를 넘어 집단이나 집단 유사의 결집을 이루어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일정한 시점에서 담당할 경우에는 이러한 국민의 결집을 적어도 그 기간중
에는 헌법기관에 준하여 보호하여야 할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국민의 결집을 강압으로 분쇄한 행위는 헌법기관을 강압으로
분쇄한 것과 마찬가지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고 전제한 다음,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들의 국헌문란행위에 항의하는 광주시민들은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수호를 위하여 결집을 이룬것이라고 할 것이므로 광주시민들의 시위를
피고인들이 병력을 동원하여 난폭하게 제지한 것은 강압에 의하여 그 권한
행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어서 국헌문란에 해당하며,
그렇지 아니하다고 하더라도 원래 국헌문란의 죄에 있어서 강압의 대상과
폭동의 대상은 분리될 수 있는바, 피고인들이 국헌문란행위를 항의하는
광주시민의 시위를 난폭하게 제압함으로써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무위원들
을 강압, 외포하게 하는 효과를 충분히 거두었으므로, 이러한 측면에서도
피고인들의 시위진압행위는 국헌문란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생각건대, 헌법상 아무런 명문의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헌법의
수호자로서의 지위를 가진다는 것만으로 헌법수호를 목적으로 집단을 이룬
시위국민들을 가리켜 형법 제91조제2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할것이다.
그리고 원심이 형법 제91조가 국헌문란의 대표적인 행태를 예시하고 있다고
본 것도 수긍하기 어렵다 할것이다.
따라서, 위 법률 조항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헌법수호를 위하여 시위하는
국민의 결집을 헌법기관으로 본 원심의 조처는 결국 유추해석에 해당하여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어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원심이 적법하게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인들이 1980년5월17일
24시를 기하여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헌법기관인 대통령,
국무위원들에 대하여 강압을 가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에 항의하기 위하여
일어난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내란행위가 아니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난폭하게
진압함으로써,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에 대하여 보다 강한 위협을 가하여 그들을 외포하게
하였다면, 이 사건 시위진압행위는 피고인들이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강압하여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국헌문란에 해당하고, 이는 피고인들이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직접적인 수단이었다고 할 것이다.
같은 취지의 원심의 사실인정및 가정적인 판단은 정당하므로, 결국 앞서
본 원심의 잘못은 판결에 영향이 없다고 할 것이다.
(3) 국헌문란의 목적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피고인들이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외부적
으로 드러난 피고인들의 행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우및 그 행위의 결과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전제하고는, 피고인들이 이른바 12.12
군사반란을 통하여 군의 지휘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함과 아울러 국가의 정보
기관을 완전히 장악한뒤,
1980년5월 초순께부터 이른바 "시국수습방안" "국기문란자 수사계획"
"권력형 부정축재자 수사계획"을 마련하여 이를 검토, 추진하기로 모의하고,
그 계획에 따라 1981년1월24일 비상계엄의 해제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예비
검속,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국회의사당 점거.폐쇄, 보안목표에 대한
계엄군 배치, 광주시위진압,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설치.운영,정치활동
규제등 일련의 행위를 강압에 의하여 행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피고인들이 행한 위와 같은 일련의 행위는 결국 강압에 의하여 헌법기관인
대통령 국무회의 국회의원등의 권한을 침해하거나 배제함으로써 그 권능
행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므로 국헌문란에 해당하며, 위 일련의
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 그 경위및 결과등을 종합하여 볼때, 피고인들이
1980년5월17일을 전후한 이 사건 범행 당시에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는바,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및 판단은 정당하다.
나, 폭동성
(1) 비상계엄 전국확대의 폭동성
(가)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에 폭동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형법 제87조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폭행 또는 협박은 일체의
유형력의 행사나 외포심을 생기게 하는 해악의 고지를 의미하는 최광의의
폭행.협박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를 준비하거나 보조하는 행위를 전체적으로
파악한 개념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1980년5월17일 당시 시행되고 있던 계엄법 등 관계법령에 의하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는 필연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게 되므로
(제11조, 제12조, 제13조),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국민에게 기본권이 제약될 수 있다는 위협을 주는 측면이 있고, 민간인인
국방부장관은 지역계엄실시와 관련하여 계엄사령관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지휘감독권을 잃게 되므로(제9조),
군부를 대표하는 계엄사령관의 권한이 더욱 강화됨은 물론 국방부장관이
계엄업무로부터 배제됨으로 말미암아 계엄업무와 일반국정을 조정 통할하는
국무총리의 권한과 이에 대한 국무회의의 심의권마저도 배제됨으로써,
헌법기관인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받는 강압의 효과와 그에 부수하여
다른 국가기관의 구성원이 받는 강압의 정도가 증대된다고 할 것이며,
따라서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의 그와 같은 강압적 효과가 법령과 제도
때문에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법령이나 제도가 가지고
있는 위협적인 효과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진 자에 의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에는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가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협박행위가 되므로 이는 내란죄의
폭동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2) 내란목적 살인에 대한 공동실행의 의사가 없고, 그 실행행위에 가담한
바가 없으며, 살인과 국헌문란의 목적 사이에 직접 관련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원심은 그 내세운 증거를 종합하여, 광주재진입작전(이른바 "상무충정작전")
계획은 1980년5월21일께부터 육군본부에서 여러번 논의를 거친후 최종적으로
피고인 이희성이 같은달 25일 오전에 김재명 작전참모부장에게 지시하여
육본작전지침으로 이를 완성하여, 같은 날 12시15분 국방부 내 육군회관에서
피고인 전두환, 황영시, 이희성, 주영복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같은 달 27일
0시1분이후 이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는데,
피고인 황영시는 같은달 25일 오후 김재명 작전참모부장과 함께 광주에
내려가 전투병과교육사령부 사령관 육군소장 소준열에게 이를 직접 전달하는
한편, 위와 같이 광주재진입작전이 논의되던중인 같은해 5월23일12시30분께
김기석 전교사 부사령관에게 무장 헬기및 전차를 동원하여 시위대를 조속히
진압할 것을 지시하였고,
피고인 정호용은 광주에 투입된 공수여단의 모체부대장으로서 공수여단에
대한 행정, 군수지원 등의 지원을 하는 한편, 소준열 전교사령관에게
공수여단의 특성이나 부대훈련상황을 알려 주거나 재진입작전에 필요한
가발, 수류탄과 항공사진 등의 장비를 준비하여 예하부대원을 격려하는 등
광주재진입작전의 성공을 위하여 측면에서 지원하였으며,
위 작전지침에 따라 전교사령관 소준열이 공수여단별로 특공조를 편성하여
전남도청 등 목표지점을 점령하여 20사단에 인계하기로 결정하는 등 구체적
인 작전계획과 작전준비를 하였고, 이에따라 공수여단 특공조가 같은 달
26일23시께부터 침투작전을 실시하여 광주재진입작전을 개시한 이래 같은달
27일6시20분까지 사이에 전남도청, 광주공원, 여자기독교청년회(YWCA) 건물
등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그 특공조 부대원들이 총격을 가하여 이정연 등
18명을 각 사망하게 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광주재진입작전을 실시하여 전남도청 등을 다시 장악하려면 위와 같이
무장을 하고 있는 시위대를 제압하여야 하며, 그 과정에서 이에 저항하는
시위대와의 교전이 불가피하여 필연적으로 사상자가 생기게 되므로,
피고인 전두환및 위 피고인들이 이러한 사정을 알면서 재진입작전의 실시를
강행하기로 하고 이를 명령한 데에는 그와 같은 살상행위를 지시 내지 용인
하는 의사가 있었음이 분명하고,
재진입작전명령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시위대의 무장상태 그리고 그
작전의 목표에 비추어 볼때, 시위대에 대한 사격을 전제하지 아니하고는
수행할수 없는 성질의 것이므로, 그 실시명령에는 그 작전의 범위 내에서는
사람을 살해하여도 좋다는 발포명령이 들어 있었음이 분명하며,
당시 위 피고인들이 처하여 있는 상황은 광주시위를 조속히 제압하여 시위
가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지 아니하면 내란의 목적을 달성할수 없는,
바꾸어 말하면 집권에 성공할수 없는, 중요한 상황이었으므로, 광주재진입
작전을 실시하는 데에 저항 내지 장애가 되는 범위의 사람들을 살상하는
것은 내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직접 필요한 수단이었다고 할 것이어서,
위 피고인들은 피고인 전두환과 공동하여 내란목적살인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하였는바,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