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및 5.18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은 성공한 쿠데타라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

무력을 동원해 정권을 찬탈하고 국가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불법세력에게는
어떠한 변명과 합리화도 통할 수 없음을 천명한 것이다.

또 비자금 사건과 관련 대기업 총수들이 대통령에게 돈을 준 행위는 범죄
라고 단정해 한국의 고질적이고 관행화된 권력형 부정부패의 전형인
정경유착에 사법적 메스를 가했다.

특히 대통령의 금품수수 행위를 포괄적인 뇌물수수로 규정한 것은 정치자금
을 빌미로 한 검은 돈 거래에 쇄기를 박는 가시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12.12 및 5.18사건과 관련, 1.2심의 판단 골격을 대부분 유지한채
일관된 논리를 폈다.

신군부측의 군사반란과 내란, 내란목적 살인죄 등 핵심쟁점에 대해
대법관들이 별다른 이견을 보이지 않은 것도 이들의 유죄가 너무나 명확
했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당초 원심의 일부를 파기하거나 자체 판결(파기자판)을 내릴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원심을 대부분 인용한 것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다만 상고심의 핵심으로 주목을 받았던 것은 내란종료시점만 원심과 의견을
달리했다.

재판부는 1심의 81년 1월24일과 2심의 87년 6월29일 소위 6.29선언중 1심의
손을 들어줬다.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는 일종의 협박행위로서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에
해당하므로 비상계엄 해제일인 81년 1월24일에 비로소 내란이 종료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의 이러한 판단은 항소심의 6.29선언을 내란종료시점으로 할 경우
5공정권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되고 당시 이뤄진 언론통폐합, 언론인 해직,
공무원 숙정, 재산 강제환수 조치 등 각종 통치.행정행위 등의 법적효력이
원인무효돼 논란의 불씨를 남겨놓을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대법원은 이와함께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한 행위는 군지휘권에
반항한 행위이며 80년 5월초 이른바 시국수습방안을 마련한뒤 비상계엄
전국확대, 국회의사당 점거, 광주 시위 진압, 국보위 설치를 주도한 일련의
행위에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대법원이 최종적인 사법적 판단이 마무리됨에 따라 정치권은 앞으로
전두환.노태우씨에 대한 사면논의를 본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자금사건에서 대법원은 "정치자금, 성금 등의 명목으로 이뤄진 금품수수라
하더라도 대통령이 직무상 또는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직무행위에 대한 대가로서의 실체를 가지는 한 뇌물로서의
성격을 잃지 않는다"고 판단해 앞으로의 뇌물사건의 사법판단 기준을 제시해
주목을 끌었다.

또 대법원은 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이경훈 전대우사장 등 4명에게 항소심
대로 무죄를 선고해 금융실명제와 관련, 업무방해죄가 적용될 수 없다는 첫
확정판례를 남겼다.

재판부는 금융실명제상의 실명은 실제 예금주 내지 자금의 실소유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금융기관은 거래자라고 주장하는 자의 명의가
주민등록.사업자등록상 명의와 일치하는지만 확인하면 된다고 못박았다.

이로써 차명예금 등 실명제 위반 범죄에 대한 유일한 처벌근거로 존재해온
업무방해죄가 사실상 유명무실화돼 앞으로 검찰의 수사와 유사사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은구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