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자기 혐오가 만연한 시대, 어쩌면 요즘 사회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스스로를 싫어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데번 프라이스는 저작 <수치심 버리기 연습>에서 '체제적 수치심'이란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체제적 수치심은 사회적 모순에서 비롯된 부정적 결과가 개인의 책임과 잘못으로 떠넘겨짐으로써 발생하는 부끄러운 감정이다. 개인이 처한 상황은 전부 그의 탓이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개인의 노력 뿐이라고 믿는 신념과도 통한다. 수치심은 인류 진보 전체에 관해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예컨대 환경오염을 비닐봉지를 사용하고 에코백과 텀블러를 쓰지 않는 개인 탓으로 돌리면, 기업들이 끼치는 막대한 환경 피해와 대중을 속이는 그린워싱 등 사회와 정부, 기업의 책임이 어느새 옅어진다. 빈곤을 낳는 사회적 구조,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막는 유리천장 등 다른 사회적 문제도 마찬가지다. 책은 사회적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체제적 수치심을 부추겨 우리를 길들여왔는지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사례들을 소개한다. 1920년대 역사상 최초로 자동차가 길에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 운전면허가 도입되기 전 미숙한 운전자들이 도로에 쏟아져 나오면서 교통사고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했다.늘어나는 교통사고에 대한 비판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자, 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무단횡단'이란 신조어를 발명했다. 보행자 사망 사고에서 자동차의 역할을 축소하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할 방법을 생각해 낸 결과다. 그들은 로비를 통해 무단횡단을 처벌 가능한 범죄로 규정하고 체제의 부재로 부상 또는 사망하는 개인들에
“따분하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토마스 헤더윅이 현대 도시와 건축물에 내린 평가다. 그는 자신이 쓴 <더 인간적인 건축>에 이렇게 썼다. “따분한 풍경을 걷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올해도 내년에도 따분한 집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따분한 사무실, 따분한 공장, 따분한 창고, 따분한 병원, 따분한 학교에서 평생을 일해야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197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헤더윅은 ‘우리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린다. 그는 건축뿐 아니라 온갖 것을 디자인한다. 펭이 의자 ‘스펀 체어’가 그의 작품이다. 런던의 새 이층 버스 디자인, 2012 런던 올림픽 성화봉도 디자인했다. 미국 뉴욕의 명소가 된 베슬과 리틀 아일랜드, 구글의 마운틴 뷰 본사, 일본 도쿄의 아자부다이 힐스 등의 건축물을 설계했다. 한국엔 2017년 완공 예정인 서울 노을섬 공중 보행로가 있다. 그가 좋아하는 건물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까사 밀라다. 안토니오 가우디가 1912년 지은 이 주거용 건물은 물결치듯 구불구불한 외관이 특징이다. 하지만 모더니즘 열풍이 불면서 이후 세계 곳곳에 지어진 건물들은 네모반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헤더윅의 말을 빌리자면 “너무 평평하고, 너무 밋밋하고, 너무 직선적이고, 너무 반짝이고, 너무 단조롭고, 너무 진지하다”모든 건물을 까사 밀라처럼 지을 순 없다. 이런 건물은 비싸다. 짓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린다. 도시에 필요한 건물을 제때 공급하려면 타협이 필요하다. 헤더윅 역시 이 점을 인정한다. 다만 평범한 건물이라도 조금만 신경 쓰면 지금보다 덜 따분한 건물이
"관객이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하도록 하는게 이번 작품의 목표예요. 관객이 춤추고, 울고, 이야기하는 것처럼요." 손가락 춤으로 삶과 죽음, 사랑을 담은 예술극 <콜드 블러드>의 연출가 자코 반 도마엘이 13·14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이 작품의 한국 초연을 갖는다. 도마엘은 국내에서 영화 <토토의 천국>(1991), <제8요일>(1996)로 국내 영화팬들에게 이름이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공연을 앞둔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콜드 블러드>는 무용과 연극, 영화, 문학을 결합한 실험적 성격의 총체극이다. 나노 댄스라고 불리는 손가락 춤으로 인간이 인생에서 보편적으로 마주하는 일들을 그려냈다. <콜드 블러드>는 2015년 벨기에에서 처음 공연한 뒤 유럽 각지와 대만에서 무대에 올랐다. 부인이자 안무가인 미셸 안느 드 메이와 함께 이끄는 벨기에 창작 집단 '키스 앤 크라이 콜렉티브'의 작품이다. 관객은 무대 상단에 설치된 거대한 스크린을 보게 된다. 무대 위 영화 촬영장을 연상케 하는 미니어처 세트와 카메라, 조명 장비가 갖춰져 있고 무용수와 스태프들이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부터 볼 수 있다. 무용수들은 미니어처 세트에서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정교한 움직임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여기에 내레이션과 음악이 어우러져 한 편의 영화가 스크린에 투사된다. 도마엘은 "관객들은 무대 위 공연과 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스크린 속 영화를 동시 목격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도마엘은 이를 "기존의 틀을 벗어난 형태의 공연"이라고 명명했다. "이 포맷에 이름을 붙이자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