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시형씨 신문 >>>

<> 이국헌의원 (신한국)

-한보철강측이 97년초 추가대출 3천억원을 요청했는데.

"정태수 총회장이 지난 1월4일 찾아와 3천억원의 추가대출을 요청,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처음 생각했다"

-한보철강이 부도가 나게 될 것이라는 상황을 알고 3천억원 지원을 거절
했는데 뒤늦게 다시 지원한 이유는 무엇인가.

"채권보존을 위해 지원했다.

당시는 은행관리 등 여러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 조순형의원 (국민회의)

-권력핵심이 대출을 지시하는 것 아니냐.

"그렇지 않다.

매년 업무계획에 의해 산업분야별 프로젝트별로 대출이 된다"

-한보에 대한 대출을 줄이려고 노력한 적이 있나.

"지원을 최소화하려 노력했다"

-황병태의원이 증인에게 연락을 취한 뒤 5백억원이 지급보증 됐는데.

"당시 검토중이었는데 황의원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신한국당 정재철의원이 정총회장을 소개해서 만난 적이 있나.

"95년 3월께로 기억한다"

<> 이상만의원 (자민련)

-96년9월에는 3조9천억원이라고 판단했으니까 맞다.

황의원이 95년 11월, 한이헌 전경제수석이 95년12월, 이석채 전수석이
96년 1월 대출청탁을 하지 않았는가.

"황의원, 한 전수석은 청탁을 했으나 이 전수석은 하지 않았다"

<> 이상수의원 (국민회의)

-1월21일 관계기관 대책회의에서 4개 채권은행단의 대한보 조건을 수용
함으로써 22일 4개 은행장이 다시 모여 경영권 포기등 조건을 외부로 발표
하지 않았나.

"22일 외부 발표를 하지 않았다.

23일 다시 모일 때만해도 정태수씨가 은행단의 경영권포기등 조건을 수락한
줄 알았는데 오후에 보니 수락하지 않아 회의가 무산됐다"

<> 이인구의원 (자민련)

-97년초에 이석채 전청와대경제수석을 만났다는데.

"1월18일 수석실 요청으로 한보관계를 보고하러 청와대에 간 것이 처음
이다"

-청와대 보고내용은.

"자금지원이 한두개 은행으로 되지 않을 상황임을 얘기했고 은행관리를
염두에 둔 대책을 건의했다"

<<< 이형구씨 신문 >>>

<> 김문수의원 (신한국)

-지난 92년 12월31일 한보철강에 1천9백만달러의 외화대출 승인이 하루만에
이루어진 것은 정태수총회장이 상당한 대선자금을 제공한 것에 대한 특혜가
아닌가.

"92년 9월19일 상공부에서 산업은행에 당진제철소를 대출 적격업체로
추천했고 한국은행도 연말까지 자금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허용했다"

-정총회장으로부터 대출과 관련한 뇌물을 받은 적이 있는가.

"없다"

<> 김경재의원 (국민회의)

-산업은행은 시설자금을 주로 대출하는데 왜 92년 대선직전 약정기간
12월17일까지로 해서 한보에 운영자금 1백50억원을 대출했는가.

"연말에는 기업체들이 자금난을 겪어 운영자금이 필요할 때였다"

-누군가 압력을 가했기 때문 아닌가.

김영삼 당시 민자당대표가 전화를 했는가.

"아니다"

-한보가 발행한 해외전환사채 4천5백만달러중 89.4%인 3천8백20만달러어치
를 국내은행이 사줬는데.

"그렇지 않을 것이다.

샀다고 해도 2백만달러정도 아닌지..."

<> 조순형의원 (국민회의)

-지난 94년 12월말 노동부장관에 임명되면서 당시 신문 인물평에 대선때
김대통령을 뒤에서 도와줬고 김현철씨와도 가까운 사이라고 나와 있는데.

"그렇지 않다"

-대선후에 현대그룹에 대한 시설자금 대출을 중단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대선후 현대의 경영이 안정되는데 시간이 걸릴 것같아 여신에 신중했다"

<> 김민석의원 (국민회의)

-외화대출 심사 실무진 가운데 두사람이 직인을 찍지 않았는데.

"잘 모르겠다"

<> 김원길의원 (국민회의)

-한보철강이 92년 12월 제출한 각서에 서울은행이 협조융자를 해주지
않을 경우 대출을 취소토록 돼있음에도 산은은 서울은행측에 이를 확인하지
않았는데 정총회장 말만 믿고 대출했나.

"서울은행과 협의한 바 없으나 회사측과는 실무적으로 협의했다"

< 허귀식.김태완.손상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