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사장. 얼핏 화려함이 연상되는 직업이다.

현란한 디스플레이, 매장마다 가득찬 세계각국의 최신.최고 상품들,
여기다 쉬지 않고 펼쳐지는 다양한 문화행사등등..

이런 업태의 특성때문에 일반인들에게 비쳐지는 백화점 사장은 한마디로
"환상적"일수 밖에 없다.

TV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백화점 경영인의 모습이 "차인표"같이 우아하고
세련된 인물로 묘사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 일게다.

그러나 이같은 외형적 이미지에 비해 백화점 사장이란 직업의 실상은
사뭇 다를 때가 많다.

세련미와 우아함이 백화점 사장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덕목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백화점 사장을 할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쩌면 세련미보다는 오히려 다소 거칠더라도 밀어붙일수 있는 힘과 발로
뛰는 적극성이 더 요구되는 것이 백화점 사장의 바람직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선 그들은 박학다식해야 한다.

취급하는 상품이 워낙 많다보니 다양한 상품과 소비패턴등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다.

사장 스스로 상품과 유통 트렌드를 알지 못하면 치열한 경쟁시대의
유능한 경영자가 될수 없다.

상품정보에만 능통해서 될일도 아니다.

백화점내에는 소매업외에 수많은 업태를 갖고 있다.

다양한 식당가는 물론 규모있는 화랑정도는 필수적이기도 하다.

다시말해 백화점 사장은 옷가게 주인에서부터 건어물가게 주인, 식당주인,
카드회사 사장, 심지어는 화랑주인의 몫도 해내야 하는 셈이다.

이러다보니 백화점사장들은 문자그대로 1백가지이상의 법령에
정통해야한다.

직접 관련있는 도소매업법은 물론 공정거래법 소비자보호법 신용카드업법
식품위생법 소방법 상품권법등 셀수없는 많은 법령들과 씨름해야한다.

어느것하나 백화점 장사와 걸리지않는 게 없다.

백화점 사장의 덕목으로 "마당발"이 필수적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면 사장의 정치력으로 해결해야하는 것이 우리기업 환경이고
보면 사장이 발이 넓지 않고서는 유능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렇지 않더라도 백화점 사장은 다양한 거래업체와 빈번히 만나고 대화를
나눠야 한다.

금융기관 공무원 학계 부동산업계등 각계 각층의 사람들과도 친분을
유지해야한다.

백화점 최고의 손님인 주부들의 생각도 알아야하고 새로 떠오르는
고객층인 신세대들의 취향도 몰라서는 곤란하다.

이러다보니 부지런히 매장을 돌아다녀야한다.

사장실에 칩거해서는 결코 앞서가는 백화점을 꾸려갈수 없다.

흔히들 백화점사업은 "점포입지, 시스템, 사람"에 좌우된다고 한다.

그동안은 좋은 목에 가게만 번듯하게 차려놓으면 손쉽게 돈을 벌수있었다.

이제 달라졌다.

입지하나로 자족하던 시대가 지나갔다는 얘기다.

시스템(기술)개발과 인재육성이 필수적이다.

좋은 시절은 다 가고 백화점 사장들은 이제 정글 한 복판에 놓인 전사가
된 셈이다.

밖으로 규제와 경쟁의 외풍을 막고 안으로는 인재를 키우는 조련사역할을
강요받고 있다.

상품을 사는 소비자뿐만아니라 점포주변 소비자들도 만족시켜야하는
상황이다.

백화점은 "10원짜리부터 1천만원짜리 상품까지" 모두 판매하는 곳이다.

이런 특성때문에 최고 경영자라고 무턱대고 통만 커서는 안된다.

하지만 기술개발과 인재양성에는 돈을 적절히 쏟아부어야 한다.

안그러면 언젠가는 경쟁업체에 밀려 점포문을 닫아야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목좋은 땅을 남먼저 사야할때도 마찬가지다.

과감한 결단이 이때 필요하다.

강한 체력과 철저한 자기관리가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잦은 외국및 지방출장, 새벽까지 이어지는 마라톤회의, 짬이 날때마다
매장둘러보기 등으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는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백화점 사장들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일 새가 없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다.

백화점 산업은 지금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그들 백화점 사장들은 지금 살아남기위해 천의 얼굴을,만(만)의
능력을 가진 마술사처럼 뛰고 또 뛰고 있다.

< 강창동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