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청문회] 국정개입 상당부분 '사실' 확인 ..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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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장과 서울시장을 거친후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꿈을 가진 현직
대통령의 아들..."
21일 한보국정조사특위에 증인으로 출석한 G남성클리닉원장 박경식씨가
밝힌 김현철씨는 이같은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국정 전반에 개입한 "소통령"
이었다.
박씨는 이날 청문회에서 현철씨의 인사개입 의혹 사례로, 이홍구 전총리,
오정소 전안기부차장, 박상범 전청와대경호실장, 신한국당 김철 전대변인,
그리고 강성구 전문화방송사장, 홍두표 한국방송공사사장 등을 구체적으로
거명했다.
박씨는 "96년 6월 신라호텔에서 현철씨와 김기섭씨, 그리고 처음본 사람을
만났는데, 현철씨가 "열심히 하라"고 하니 그 사람이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며 "이틀후 그가 안기부차장으로 발령난 것을
보도를 통해 보고 그 사람이 오정소씨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현철씨가 4.11총선 당시 신한국당 공천에 관여한 사실도 폭로
했다.
박씨는 현철씨가 "뽀빠이" 이상용씨를 대전지역에 공천하려 했던 사실과
자신의 친형인 박경재변호사에게 전국구의원직은 물론 서울의 지역구 출마
를 제의했던 사실등을 증언했다.
그는 한이헌 전경제수석의 경우 당초 이기택 민주당총재의 출마지역인
해운대구에 나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현철씨를 만난후 자신이 원하는 지역에
출마할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박씨는 "현철씨가 국정에 개입했느냐"는 거듭된 질문에 "정치를 하는
의원들이 더 잘 알것 아니냐"고 반문, 현철씨의 국정개입에 확신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박씨는 또 현철씨가 처음에는 아버님을 돕겠다는 순수한 뜻으로 정치에
참여했으나 뒤에는 자신이 직접 국회의원에 출마를 고려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95년 6.27지방선거 참패때문에 출마에 부담을 가졌고, 대통령께서
직접 만류해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총선직후 현철씨가 부산시장과 서울시장에 나가겠다는 얘기를
했다며 "현철씨가 대선당시 30~40대 사람들과 광범한 친교를 맺은 것도
단지 당시의 선거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해 현철씨가 상당한 정치적
야심을 갖고 있었음을 짐작케 했다.
< 김태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2일자).
대통령의 아들..."
21일 한보국정조사특위에 증인으로 출석한 G남성클리닉원장 박경식씨가
밝힌 김현철씨는 이같은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국정 전반에 개입한 "소통령"
이었다.
박씨는 이날 청문회에서 현철씨의 인사개입 의혹 사례로, 이홍구 전총리,
오정소 전안기부차장, 박상범 전청와대경호실장, 신한국당 김철 전대변인,
그리고 강성구 전문화방송사장, 홍두표 한국방송공사사장 등을 구체적으로
거명했다.
박씨는 "96년 6월 신라호텔에서 현철씨와 김기섭씨, 그리고 처음본 사람을
만났는데, 현철씨가 "열심히 하라"고 하니 그 사람이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며 "이틀후 그가 안기부차장으로 발령난 것을
보도를 통해 보고 그 사람이 오정소씨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현철씨가 4.11총선 당시 신한국당 공천에 관여한 사실도 폭로
했다.
박씨는 현철씨가 "뽀빠이" 이상용씨를 대전지역에 공천하려 했던 사실과
자신의 친형인 박경재변호사에게 전국구의원직은 물론 서울의 지역구 출마
를 제의했던 사실등을 증언했다.
그는 한이헌 전경제수석의 경우 당초 이기택 민주당총재의 출마지역인
해운대구에 나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현철씨를 만난후 자신이 원하는 지역에
출마할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박씨는 "현철씨가 국정에 개입했느냐"는 거듭된 질문에 "정치를 하는
의원들이 더 잘 알것 아니냐"고 반문, 현철씨의 국정개입에 확신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박씨는 또 현철씨가 처음에는 아버님을 돕겠다는 순수한 뜻으로 정치에
참여했으나 뒤에는 자신이 직접 국회의원에 출마를 고려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95년 6.27지방선거 참패때문에 출마에 부담을 가졌고, 대통령께서
직접 만류해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총선직후 현철씨가 부산시장과 서울시장에 나가겠다는 얘기를
했다며 "현철씨가 대선당시 30~40대 사람들과 광범한 친교를 맺은 것도
단지 당시의 선거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해 현철씨가 상당한 정치적
야심을 갖고 있었음을 짐작케 했다.
< 김태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