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호

일어나선 안 될, 창피스런 일들이 줄줄이 일어나고 있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한보비리, 최근의 경부고속철 부실공사,
등등.

다른 한편, 국제수지 적자와 고비용 저효율 경제에 대해 조야 모두 크게
염려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진단이 우선 정확해야 다른 처방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우리들 개개인의 윤리.도덕에 혹은 개별 경제주체의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같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사회의 "경기규칙"에 있다.

경기규칙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태어나서 하는 일이란 대체로 부, 권력, 명예를 좇는 것인데,
이를 인생경기라 하면 거기에는 경기규칙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다.

우리 사회의 한법, 법령, 정부가 관장하는 각종 인허가제도, 행정규제
등의 성문규칙과 이러한 규칙이 실제로 운용되는 모습이 우리사회의 경기
규칙이다.

관습과 관행도 경기규칙의 일부이다.

운동경기로 치면, 득점 반칙 처벌 등에 관한 규정뿐 아니라 규정을
공평하게 적용하는지, 심판이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지 여부까지도
포함하는 말이다.

예컨대, 승진에 관한 우리사회의 경기규칙이란, 정부 혹은 민간기업의
승진 규정만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조건의 사람이 승진이 빠르다 혹은
늦다는 불문율까지 가르키는 것이고, 은행대출에 관한 우리사회의 경기
규칙이란 성문의 대출 규정만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실제로 대출을 받을수
있는가를 가르키는 것이다.

이 경기규칙이 왜 중요한가?

가령, 승진 혹은 대출을 원하는 개개인의 입장으로서는 이 사회의
경기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출세가 어려워지든지, 사업에 실패하든지, 등등
어떤 형태로든 비용을 지불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다를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더라도 순교자 같은 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모두 그것을 따르게 마련이다.

모든 사람이 양심껏 각자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면 정치고 경제고
모두 잘 될 것이라는 것은 너무 소박한 생각이다.

경기규칙이 그릇되어 있으면 양심이란 쓸데 없는 것이 되고 각자 열심이
뛸수록 사회 병폐가 늘어날 수도 있다.

경기규칙은 어떠해야 하는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

즉,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고 모든 사람의 능력과 노력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며,알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내용을 알수 있어야
한다.

이런 규칙 아래 자유로운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할때 물건을 만드는 일이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든 "가장 잘하는 사람"이 맡아 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잘 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경쟁을 통해서 가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경기규칙은 불공정하고 불투명하다.

그래서 가장 잘하는 자 대신 못하는 자가 일을 맡고 있다.

이것이 우리 경제의 저효율 고비용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한보비리에서 보듯이, 시장경제의 자원배분에 있어서 핵심과정이라 할수
있는 금융대출이 사업의 수익율이나 위험도와는 상관없이 결정되고 있다.

가장 잘하는 자가 아니라 은행장에게 압력을 넣는자가 철강사업을 하게
되는 것이다.

금융대출뿐 아니라 정부의 인허가 사항, 각종 공사 등등에서 많은
기업들이 특혜를 베풀수 있는 실력자에게 로비를 하고, 실력자들은
이를 이용해서 축재하고 더욱 출세할 길을 찾는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많은 지도급 인사들이 벌였던 인생경기였고, 이에
능한 사람이 부를 축적하고 권좌를 차지하고 명예를 누리는 것이 우리
사회의 경기규칙이었다.

운동경기에서 규칙이 공정투명하면 경기결과는 온전히 장내에서
결정되므로 가장 잘하는 자가 승자가 되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경기를
보게되지만, 가령, 심판이 뇌물을 받으면, 승자는 장외에서 심판과의 거래에
의해 결정되고 최선을 다하는 경기는 볼수 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경기규칙이 공정투명하면 자원은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가장 잘하는 자에게 배분될 것이고, 불공정 불투명하면 시장밖에서
부정과 비리를 통해 부정과 비리에 능한 자에게 배분될 것이다.

경기규칙이 공정투명할수록 우리사회의 총자원 가운데 가장 잘하는 자가
맡아 쓰게 될 부분이 커지고, 모든 사람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능력껏
재능껏 최선을 다할 것이며 그 결과 우리 경제의 효율이 높아지고 경쟁력이
강해질 것이다.

따라서 대형사고와 비리의 재발을 막고 경제효율과 경쟁력을 높이려면
크고 작은 모든 성분 규칙을 공정투명하게 고쳐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문규칙의 운용이다.

심판의 경기운영이 공정투명해야 하듯이, 성문 규칙의 운용 자체가
공정투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인치가 법치로 바뀌어야 한다.

이것이 공정투명한 경기규칙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러면 대통령이든 내각제의 총리이든 최고통치권자의 권력이
절대적이어서는 안된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법치가 확립될때 민주주의도 자유시장경제도 창달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