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경제회생노력의 일환으로 금년예산 71조원중 2조원을 감축하고
내년예산을 9%정도의 한자리수 증가로 묶겠다고 했다.

정부가 긴축을 통해 솔선수범하겠다는 노력을 보인 것은 환영하지만
정부예산에 관한 근본적인 재검토는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요약컨대 정부는 팽창예산의 관행에서 벗어나 거품경제의 뿌리인
물가오름세 심리, 즉 "거품심리"의 제거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금년도 정부예산의 44.1%를 점하는 경직성 인건비를 금년
하반기분 만이라도 작년 수준으로 동결할 것을 제의한다.

이 영역의 예산이 작년보다 4조4천억원 증가했으므로 하반기분을
동결하면 2조2천억원의 예산이 삭감된다.

정부는 현재 삭감목표로 잡고 있는 2조원의 대부분을 사회간접자본
확충및 농어촌 구조개선사업의 집행유보를 통해 달성하려 하고 있다.

이는 공무원 자신들과 직접 관련된 경직성 인건비는 그대로 둔채 순수한
국민 몫이랄수 있는 사업비의 삭감을 의미한다.

이는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현재 한국경제의 위기는 정부의 연례적 팽창예산에서 초래됐다고 할수
있다.

연평균 본예산증가율이 80년 이후 지난 16년간 무려 16.8%에 달했다.

정부가 이같이 씀씀이를 늘리면서 국민들에게 권장한 5%수준의 물가억제,
과소비억제와 근검절약이 과연 의미있게 받아들여졌겠는가.

정부에 대한 불신감만 키워왔다고 하겠다.

지난 16년간 1인당 국민소득은 80년 1천4백81달러에서 96년 1만5백48달러로
7.1배 증가한데 반해 정부 본예산은 같은 기간에 5조8천억원에서
60조1천억원으로 10.4배나 증가했다.

국민소득보다 정부소비가 46.5%나 더 많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정부가 과소비와 고물가를 선도했으며 이나라 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했다고 할수 있다.

왜냐하면 정부의 예산증가율은 민간부문 가격인상의 척도로 활용될수
있으며 이같은 물가앙등 상황에서 근로자의 임금인상요구는 당연하다.

현재 수준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임금인상이 필요하게 되고, 이로
인한 파업은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제공해줄수 있다.

고임금으로 만든 제품은 원가상승으로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그동안 우리가 수없이 경험한 상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오름세 심리의 차단으로 경제를 회생시키는 일은 나라를
책임관리하는 정부가 선도해나가야 한다.

민간부문에서 임금동결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정부가
임금동결로 나서면 범국민적인 내핍의 고통감수로 확산될 수 있으며, 이를
5년 정도만 감내하면 우리의 경제활력은 회복될수 있다고 본다.

지난 7년간 우리의 임금은 예산증가율과 유사한 연평균 16.2%씩 인상돼온
반면 경쟁국인 일본은 우리의 17.3%수준인 2.8%씩 밖에 인상되지 않았다.

이는 연평균 1~2%라는 일본 정부의 낮은 예산증가로 뒷받침됐음을
직시해야 하겠다.

거품제거엔 당장의 고통이 따를수 있다.

각계각층에서 불만과 원성이 나올 것이다.

지난날의 거품경제 관행으로의 회귀충동이 개인이나 나라나간에
일어난다.

최근의 경제위기에 대한 처방으로 정부사업의 조기집행이나 통화의
충분한 공급 등이 바로 그것이다.

금연을 시도하는 이가 체내 니코틴함량이 감소하면서 상승하는 끽연욕구를
참지 못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마는 경우와 같다.

궁극적으로 정부인력을 민간 수준으로 감축해야 한다.

공익성이 높은 최소기능을 제외한 대부분의 생활-생업관련 기능들을
민간에 이양하고 국민자율에 맡겨 그 결과에 대해 국민 각자가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국민의 자율능력 신장으로 정부의 간섭과 책임이 이처럼 배제돼야
국민생활의 자유감각은 높아지고 저비용-고능률의 생산적인 사회건설이
가능해진다.

간섭에 따른 무책임, 그에 따른 의존과 타율이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기업의 부도에, 백화점 세일에, 약국의 가격파괴에 왜 정부가 나서야
하는가.

정부의 과잉간섭이 규제를 낳고 규제회피를 위해 부정부패가 생긴다.

국민의 91%가 업무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금품과 향응이 필요하다는
반응이 이를 반증한다.

과잉간섭은 과잉인력에서 나온다고 할수 있다.

70년이후 지난 25년간 인구는 3천1백49만명에서 4천4백85만명으로
42.4% 증가한데 반해 공무원 수는 43만명에서 91만명으로 1백11.6%
증가했다.

인구보다 2.6배나 폭증했다.

그동안 컴퓨터 등 사무자동화와 행정기술의 발달을 전제하면 더욱 그렇다.

정부개혁의 성공 모델로 부각되고 있는 뉴질랜드는 85년 공무원
8만명에서 95년 4만명으로 반감시켜 공무원 1인당 국민수가 89.5명이다.

우린 이의 약 반인 49.3명으로 생산성이 그만큼 떨어지며 감축의 여지가
큼을 알수 있다.

출범때부터 작은 정부를 주창해온 최초의 문민정부답게 그동안의 실정을
만회하고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뜻에서 이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예산
동결과 정부축소라는 개혁의 물꼬를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바란다.

그래야만 전국민이 고통감수 대열에 나설수 있으며 우리경제와 나라가
다시 일어날수 있다.

임기말년의 이 한해도 이 나라와 이 국민에겐 그냥 낭비될수 없는 귀한
기회임을 행동으로 과감히 보여주길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