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강택민) 중국 국가주석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23일
크렘린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 구상을 담은 공동
성명에 서명했다.

이 성명은 탈냉전시대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국이 된 미국의 힘과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이 주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세계의
다극화 체계 및새로운 국제질서 건설을 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정상은 특히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정책을 겨냥, "냉전적
사고를 종식시키고 블록 정책에 반대할 필요가 있다"며 "블록 파워가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강조했다.

양국 정상은 전세계적으로 적용될 새로운 안보개념으로 어느 나라도 패권
정치를 행사하지 않고 국제문제를 독점하지 않는 "다극화 세계"를 제시하고
비동맹운동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옐친 대통령은 1시간이상 진행된 정상회담 직후 "이번 회담은 21세기의
운명을 결정하는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과 러시아 양국은 과거 공산권 강국으로서 수십년에 걸친 경쟁관계에서
벗어나 근년에 들어 우호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두 정상은 이에 따라 강주석의 모스크바 방문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러시아 총리가 6월 하순 중국을 방문하고 옐친 대통령도 오는
11월 중국을 국빈방문키로 합의했다.

강주석은 이날 러시아 하원에서의 연설을 통해 지난해 4월 옐친대통령의
북경방문 당시 합의했던 양국 정상간 핫라인(직통전화)을 조만간 개통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핫라인을 개설키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중.러 관계를 중시
하려는 중국측의 입장을 엿보게 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이와함께 경제분야 협력과 관련해 내달 중국에서 핵발전소
합작 설립계약을 체결키로 했으며 러시아 톰스크에서 중국 상해를 잇는
아시아대륙 횡단 가스관을 건설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협의했다.

두 정상은 양국관계를 보다 강화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양국의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등이 참여하는 "공동 우호발전위원회"를 설립키로 합의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