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일기씨 신문 ]]]

<> 이인구의원 (자민련)

-한보건설사장은 언제 맡았나.

"96년 5월20일 한보건설 사장으로 전보됐다"

-왜 맡았나.

"당시 한보건설의 국내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잦아 인책인사가 단행돼
내가 맡게 됐다"

-노무비를 10배 과대계상해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보도를 들었나.

"들었다.

유원건설과 관련된 사항은 아니다.

검찰에서 그 부분에 대해 재정본부서 아산만 공사비로 2억~3억원씩
나갔으며 94,95,96년 철강에서 1천억원, 한보에서 3백억원등 1천3백억원이
나간 것으로 실무자들이 확인했다고 했더니 노무비 계상방법을 물어와
1백억원을 1천억원으로 부풀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 김문수의원 (신한국)

-대선때 한보가 자금을 대줬다는 얘기를 들었나.

정보근씨와 김현철씨가 가깝나.

"아니다.

95년10월께 정총회장이 구속됐을 때 정보근씨가 사장단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항간에 내가 현철씨와 가깝다는 소문이 있으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 김원길의원 (국민회의)

-철강에는 정씨의 자본 가수금 계정이 있나.

"없다.

부동산 주식배당금 노태우씨 비자금등 1천4백억원이 법인으로 모두
들어왔다고 밝힐 수 없다.

7백억~8백억원이 법인으로 들어와 은행차입금으로 처리했다"

-노씨 비자금은 어떻게 처리했나.

"3백억원은 (주)한보의 증자자금으로, 나머지 3백억원은 기업인수자금으로
했다"

<> 김학원의원 (신한국)

-열연설비를 도입하면서 한보철강이 (주)한보에 이윤을 남기고 팔았고
(주)한보도 이윤이나 관리비등을 붙여 한보철강에 되팔았나.

"그렇다.

(주)한보 외형문제도 있어 애초에 총괄계약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노무비를 과다계상한 이유는.

"영수증이 없는 이자등 계수상 수치정리를 위한 것이다.

과거에 털지 못한 것을 아산만 공사때 턴 것이다.

과거에는 아산만 공사같은 언덕이 없었다"

<> 이상수의원 (국민회의)

-93년에 채권.채무관리단을 조직한 것은 정태수씨가 빼 쓴 2천억원을
짜맞추기 위한 것 아니냐.

"대여금 계정을 정리하기 위해 계획했으나 실제 운용은 하지 않았다"

-검찰에서 94년이전 정씨가 한보그룹에서 빌려간 돈이 2천억원 된다고
진술했지 않나.

"한보상사에서 계열사로부터 차입금이 2천억원 된다고 했다.

계수상의 대여금을 차입금으로 잡은 것이다"

-2천억원을 어디에 썼나.

"실제 자금이 빠져나간 것이 아니라 80년부터 이월돼온 어음할인료등 각
계열사의 비용 가운데 처리되지 않은 대여금 계정을 수치상 정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 한이헌씨 신문 ]]]

<> 이상만의원 (자민련)

-김현철씨를 언제부터 알았나.

"90년 겨울 김영삼대표 경제자문을 맡고부터 알았다"

-홍인길의원과는 언제부터 알았나.

정태수씨는.

"현철씨와 마찬가지로 그 무렵이다.

정씨는 이 순간까지 만난 적이 없다"

-94년10월 경제수석 부임후 한보철강에 대해 보고받은 바 있나.

"그런 사실이 없다"

-홍인길의원으로부터 한보 대출청탁을 받았나.

"대출청탁을 받았다고 하기 어렵다.

산업은행 시설자금 대출이 제때 적절하게 나오지 않는다고 2~3차례
얘기했다.

잘봐 달라고 하기 보다는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는데 대한 지적 같았다"

-객관적으로 청탁으로 봐야 하지 않나.

"지금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청탁이나 외압이란 단어가 중요하지만
당시에는 원만하게 대출되지 않은데 대한 불만토로였다"

-누구에게 대출을 부탁했나.

대출이 됐나.

"검찰에서도 기억이 불분명하다고 했다.

김시형총재 증언을 듣고보니 전화를 한 것같다.

6월에 전화를 한 뒤 8월에 4백억원이 대출됐다.

전화하고 두달후이므로 산업은행 대출심사가 가능했을 것이며 나때문에
대출됐다고 보지 않는다"

-산업은행 총재로서는 대통령의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지 않나.

"''홍수석이 부탁하더라''하는 말을 붙여 확대해석은 안했을 것이다"

-한보의 유원건설 인수에 경제수석실이 개입했나.

"유원건설 인수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95년 6월15일 윤진식 비서관이 제일은행 박석태 상무에게 보고를 받은 이후
다음날 윤비서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금융기관과 기업간 사거래로 판단해 별 관심이 없었다"

-한보는 철강사업을 하도록 하고 현대는 안된다고 한 이유는.

"시기적으로 병행돼 오해의 소지가 있으나 현대는 96년부터 이 문제를
본격 제기했고 내가 재임할 때 현대는 물밑준비만 했었고 본격적인 논의는
없었다.

서로 상관관계는 없다"

<> 이국헌의원 (신한국)

-김현철씨와는 지난 90년 알기 시작한 이후 몇번 만났나.

"대선전에는 1~2번 정도 봤는데 대선 당시는 김영삼후보를 수행해 전지역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만나기 어려웠다.

대선후에는 3~4번 만났고 통화도 했다"

-경제기획원 차관 청와대경제수석 등으로 승진하고 15대 총선때 선거구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김현철씨의 지원을 받지 않았나.

"김대통령의 직접 인지에 의해 발탁된 관계로 다른 사람의 조력이 필요
없었다.

94년 12월중순께 경제수석을 그만두고 부산동구로 내려가 사무실을 차리고
조직도 정비했다.

내가 강력히 반발했으나 부산 전체의 공천을 원활히 한다는 당방침이
워낙 강해 선거구를 옮기게 됐다"

-대통령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하고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를 실천했다고 생각하나.

"정확히 실천했다"

-한보철강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고 분석하고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나.

"부도가 난 뒤였다"

-그 이전에는 관심을 갖고 분석하거나 보고받은 적이 없나.

"없다"

-정총회장이 수서사건으로 구속됐고 이후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으로
파장을 일으킨 것을 알고 있었나.

"알았다"

<> 이양희 의원 (자민련)

-현철씨와 정보근씨 오세천 청와대비서가 9월7일 점심을 함께 한뒤 증인
재임시 3개은행에서 9억달러 외화대출이 된 사실을 알고 있나.

"모르고 있다.

<> 박헌기의원 (신한국당)

-정보근씨가 한보부도 직전 청와대 관계자와 여러번 통화한 사실이 확인
됐다.

정씨와 통화한 오세천 민원비서와 강상일 인사.재무비서관 등을 아나.

"알고 있다"

-경제수석 재직시 이들로부터 청탁받은 일이 없느냐.

"없었다"

-여러차례 통화한 점에 비춰 이들이 정보근씨와 상당히 밀착했다는 의심을
가질 수있는데 이들의 직무에 비춰 한보부도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나.

"그런일은 없을 것이다"

<> 조순형의원 (국민회의)

-대선이 끝나자 마자 현대그룹에 대한 대출이 중단됐는데 이는 산업은행의
자율적 결정이냐.

"현대에 대한 대출에 시동이 걸리고 있다는 일반의 인식과 시각이 깔려
있었으나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본 결과 분명한 실체가 없었다.

그래서 "실체가 분명치않은데도 마치 제재를 가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문민정부의 경제정책이 성공하려면 지금 투자를 많이해야 한다"고 보고
했더니 김대통령이 "즉시 시정하라"고 해 산업은행에 "독자적으로 판단해
달라"는 뜻을 전했다"

-당진 제철소가 건설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나.

"몰랐다.

나는 경제기획원에 있었기 때문에 알기 어렵다"

-그래도 경제기획원 차관을 했고 89년부터 당진제철소 일이 시작됐는데.

"아둔한 탓인지 모른다"

-그게 말이 되는가.

"정부에 있어 보면 지금 삼성이나 현대나 대우가 반도체공장을 한다,
자동차공장을 한다, 이런 것들은..."

-김시형총재에게 전화한 것은 그것이 홍인길 의원의 부탁이라는 것을
상대방에게 분명히 했고 또 그것이 민원 차원에서 가볍게 얘기한 것이라고
그러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을텐데.

"그 당시에 한보가 지금과 같은 그런 상황에 있다면 그러한 전화는 대단히
잘못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봐도 마땅하다.

그러나 그때 평상심에서 서로 주고 받은 말을 전달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대통령의 뜻이다, 압력이다, 이런 생각은 안 했다"

< 허귀식.김태완.손상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