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규(50.국문학과) 고려대 교수의 컴퓨터 사랑은 남다르다.

"PC"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82년말 컴퓨터와 처음 인연을 맺은 김교수는
15년 가까운 경력이 말해주듯 컴퓨터 다루는 솜씨에서 이미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섰다.

현재 한국학연구기관인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장으로 재직중인 그는 전공인
고전문학 데이터처리를 위해 직접 프로그램을 짤 정도로 이 분야에선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16K바이트 메모리를 가진 컴퓨터가 처음으로 선보이던 당시 애들의 성황에
못이겨 "애플II+" 컴퓨터를 구입했습니다.

그후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는데 정작 애들보다 제가 더
컴퓨터에 빠져버렸지요"

김교수는 미국에서 1년간의 교환교수 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86년말 XT급
IBM PC를 구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컴퓨터의 세계에 빠져들게 됐다.

당시 월급의 1.5배를 넘게주고 산 이 컴퓨터를 통해 강의및 연구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은 물론 프로그램 짜는 법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92년 개발한 국어자료 처리를 위한 지능형 순차배열 프로그램
"한솥(HanSort)"이 제가 만든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당시 한글과 한문이 혼용돼 있는 자료의 경우 가나다순으로 제대로
정리할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었습니다.

고전자료를 손쉽게 정리하는데 쓰기 위해 당시 문화부의 지원을 받아
"한솥"을 만들었지요"

이 프로그램을 통신망 등을 통해 무료로 배포, 국문학계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은 김교수는 또 몇몇 컴퓨터 프로그램업체에도 개발보고서를 건네줘
한글과컴퓨터사의 워드프로세서에 일부 기능이 채용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교수가 개발한 프로그램은 소소한 것까지 포함하면 줄잡아 30~40개에
이른다.

어절통계를 위한 프로그램 "워즈(Words)", 5천2백여수의 시조를 담은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 등은 아직까지도 많이 이용된다.

"또 잊을수 없는 것은 1910~90년 한국 현대시의 주류를 이루는 시인
3백16명의 시 1만1천여편을 CD롬 타이틀에 담아낸 "한국의 현대시" 편찬
작업입니다.

국문학과와 전산학과 전공교수및 연구원 40여명이 동원돼 만들어진 CD롬
타이틀이 PC에서 제대로 구동되는 것을 봤을때의 감회는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현재 2백MHz 펜티엄PC를 사용하고 있는 김교수는 컴퓨터를 주로 문서작성과
고전자료의 DB작업, 국어사전 편찬을 위한 DB에 이용한다.

또 인터넷을 통해 외국 한국학연구기관의 동향을 파악하며 일본 중국의
학자들과 컴퓨터 한자처리문제를 논의하기도 한다고.

"지금 민족문화연구소는 한국통신의 지원으로 "한국전통문화정보DB"를
구축중"이라는 김교수는 "당장은 상업성이 없다할지라도 문화역량을 키운다는
점에서 이같은 한국학 연구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많은 관심과 투자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글 김수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5일자).